여우와 두루미
여우와 두루미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13.11.1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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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신뢰 없이 국가발전 어렵다

귀를 열고 민심을 얻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 김성욱 본지 발행인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계절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각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통해 민심의 향배를 파악한 민주당이 조건 없이 정기국회에 복귀한다고 밝혔다. 당연하고도 잘한 결정이다. 지난 9월 18일 추석을 하루 앞둔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날에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가 천막당사에서 회갑을 맞이했을 때만 해도 금년 정기국회는 파행으로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 첫 날 천막당사가 있던 시청 앞 광장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한국정치의 자화상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쇳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착잡하고 무겁기만 했다.

인생에 있어서 회갑(回甲)이란 제2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된다는 의미다. 공자(孔子)는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十有五而志于學), 서른 살에 스스로 인생의 기초를 세웠으며(三十而立), 마흔 살에 이르러 세상사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었고(四十而不惑), 쉰 살에 하늘의 이치를 깨달았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 살에 이르러서야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 순응하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六十而耳順)’고 가르친다. 이순(耳順)이란 귀 이(耳)에 순종할 순(順)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가치 있는 말에 귀를 기울여 소통(疏通)의 지혜를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9월 16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렸던 박근혜 대통령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사이에 벌어졌던 3자 회담의 실망스러운 결말을 지켜보면서 공자의 가르침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가는 세 지도자 모두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귀는 막히고 마음은 철벽과도 같이 닫혀 있으니 이보다 더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대화란 상대방의 가치와 존재를 인정하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대화는 애초부터 성립될 수가 없는 법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여우와 두루미」의 식사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번 3자 회담은 이해와 설득을 전제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아니라,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굴복시키려는 웃지 못 할 정치쇼에 지나지 않았다. 담판에서 이기는 것만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민심을 얻고 국민의 신뢰를 쌓는 것이 영원히 이기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이념이나 가치가 훼손될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30년 전의 군사독재가 부활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안기부사건이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婚外子) 문제는 적법절차와 윤리 규범에 따라 순리대로 풀어나가면 될 문제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로 경제다. 세계적 금융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일본의 군국주의 우경화와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문제가 경제 외교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는 우리 정부의 적절한 대응으로 위기의 고비를 잘 넘기고 있지만, 산업기반이 취약한 수산업의 경우는 일본 방사능 날벼락에 파산의 위기에 까지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 지도자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정치가 국민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여야 할 것 없이 정권욕에 눈이 멀어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어리석음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주기를 기대한다.

우리 수산물 방사능 오염 없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유출 공포가 수산계를 강타하고 있다. 추석대목을 기대했던 수산관련 종사자들은 매출 감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정부와 수협중앙회, 원양산업협회를 비롯한 수산관련 단체들이 발 벗고 나서서 우리나라 수산물에는 방사능 위험이 전혀 없다며 적극적으로 대국민홍보를 하고 있지만 방사능 괴담은 어느새 소비자들의 뇌리에 실존하는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어서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지도 벌써 2년 7개월이나 지났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발표만 믿고 방사능 오염물질이 제대로 통제되고 있는 것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7월 22일 일본 도쿄전력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원전에 있던 방사능 오염 지하수가 일부 바다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확인함으로써 그동안 여러 인터넷 매체를 통해 떠돌아다니던 ‘방사능 괴담’이 사실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2008년 한국 사회를 초토화시켰던 ‘광우병 괴담’의 공포가 또다시 되살아나는 듯했다.

재래시장에는 주부들의 발길이 끊기고, 명태, 고등어, 오징어, 갈치 등등의 수산물 수요가 급락했다. 당연히 수산물 가격도 폭락했다. 그동안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에서 생산되는 49개 품목의 수산물에 대해서만 수입금지 조치를 취해왔던 한국정부가 지난 9월 7일부터 이들 8개현 수산물에 대한 전면 수입금지 조치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너무나 당연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WTO(세계무역기구)의 규정에 의하면 수입식품에 대한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수입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돼있다.

그동안 해양수산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수입수산물뿐만 아니라 우리 연근해 수산물에 대해서도 방사능 검사를 충실히 진행해 왔지만 단 한 건의 위험요소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지금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세슘과 요오드의 경우 세계 각국의 관리기준 가운데 제일 낮은 기준인 일본의 100베크렐(Bq/Kg)이하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있는 수산관련 식품은 인체에 아무 영향이 없다. 지금까지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문제에 대해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우리정부 당국이 취해온 여러 가지 조치들은 아주 합리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적 대증요법에 앞서 연구기관의 과학적 분석 결과를 제시하고 국민들의 인식을 올바른 길로 계도해나가는 선제적 노력을 좀 더 치밀하게 기울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사회에는 언제부턴가 「행동하는 지성(知性)」은 사라지고 좌우 흑백논리에 몰입된 사이비 집단들이 혹세무민의 난장에서 활개를 친다. 사회적 통합을 지향함으로써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놓아야 할 정당과 정치인들마저도 극한 대립의 반사이익에 편승해 파멸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방사능 공포보다 더 위험한 정치 불신의 공포에서 벗어날 때 우리나라 경제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정당이든, 국가든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절대 존립할 수가 없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여주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내실 있는 정기국회를 통해 민생안정에 헌신해주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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