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19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19
  • 남송우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9.12.0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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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파 수필에서 확인하는 시적 감수성
향파 이주홍

[현대해양] 향파는 1957년에 『예술과 인생』이란 첫 수필집을 펴냈고, 1961년에 두 번째 수필집 『조개껍질과 대화』를 펴냈다. 전자에 실린 수필들은 전부 79편으로 2편을 제외하고는 전부 195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수필이다. 그리고 후자의 수필집에는 전부 94편이 살려있는데, 56편이 50년대 후반에 쓰여진 수필이며, 나머지는 1960년 이후의 수필이다. 그래서 이 두 권의 수필집에서 1950년대에 쓰인 수필을 중심으로 그의 수필이 보여주는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수필은 다른 장르와 달리 인간의 삶의 모습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글이다. 삶과 밀착되어 있는 생활인의 글쓰기라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세계에 대한 작가의 정신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특징을 지닌다. 이런 면에서 수필은 한 작가의 인문학적 토대를 그 어느 장르보다 투명하게 내보인다.

향파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수필 속에 다양하게 풀어놓고 있다. 특히 그의 문학 수업에 대한 회상을 그의 수필 「예술과 인생」에서 자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자신을 객관화하여 서술하고 있는 다음 장면은 그의 문학에의 눈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열대여섯 살 됨직한 어린 소년은 풀밭에 누워서 잡지를 보느라 삼매경에 들어 있다. 소년은 가끔 얼굴 위로부터 책을 걷고는 공상에 잠긴 맑은 눈으로 바다 빛 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어디선지 뻐꾸기 소리가 흘러온다. 함박꽃처럼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송이에 눈이 지치면 소년은 가벼운 한 숨을 남기면서 다시 책을 얼굴로 가져간다. 눈으로 보이는 실재 외에 세상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소년은 이때에 다시 한번 확신한다. <예술세계> 이런 사치스런 어휘를 쓸 수 있는 소년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걸 거라는 것만은 스스로 규정하고 또 자신했다.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소년은 알만 했다. 이것은 경이의 개안이었다. 인간은 시라는 세계에도 참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의미, 신통한 영물이란 것을 소년은 발견했다. 소년의 눈빛은 놀라리만치 광채를 뽐내고 가슴은 뿌듯하게 부풀어 올랐다. -중략- 시라는 글자에서 오는 실감이 이렇듯 향기롭고 황홀한 것이었을 줄은 물론 소년으로서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이간으로 태어나 고마움과 기쁨을 소년은 비로소 만끽했다. 기미만세 다음 해인 1921 여름의 어느 오후의 일이었던가, 빈한하고 고독하던 소년 이주홍은 그 때 풀밭에 누워서 시 잡지 《금성》을 읽고 있었다.

향파가 처음 접하게 된 문학장르가 시였다는 점과 현실세계와는 다른 예술세계가 존재한다는 인식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시는 산문보다는 상상력을 촉발하는 힘이 강하며, 이 힘은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역동성을 가진다. 향파가 다른 작가들보다 예술성을 그의 문학에 있어, 중요한 토대로 삼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문학에 대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자신의 문학에 대한 인식을 글로 객관화하고 있는 이 시기가 33년이나 지난 뒤의 논의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문학적 이력을 회고하고 있는 한 장면이란 점에서, 향파문학의 근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때가 향파가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서당을 다니다가, 서울로 가서 1년 고학을 하고 시골로 다시 돌아온 상태이기 때문에 문학에 대해 이제 막 눈뜨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향파는 이렇게 시를 통해서 문학의 눈뜸도 있었지만, 서당생활 역시 향파에게는 문학의 토대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서당에서는 첫 동문선습으로부터 시작해서 통감, 논어, 맹자, 중용, 그리고 여름엔 연주시와 고문진보를 배우면서 훈장님이 시키시는 대로 한시를 지었다. 엄청나게 무리한 분량으로 배우기도 했거니와 몇 시간을 달아 훈장 앞에 꿇어앉아서 논어 20권을 한 자의 빠짐이 없이 암송해야 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의 사당교육이 얼마나 잔인한 주입식이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여름 동안의 시작시간만은 한없이 재미가 났었다. 훈장은 때마다 나의 시에 관주의 비점을 찍으면서 극구하여 칭찬을 해주시었다. 때문에 이 동안만은 동무 아이들로부터 시기와 경원의 적이 되어야 하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가 내게 있어서 제일 행복한 때이기도 했거니와 아버님께서 이 불초자에게 가장 큰 기대를 가졌던 것도 아마 이때를 빼놓고는 다시없었으리라 생각된다.

향파는 6살 때부터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운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위 내용을 보면, 보통학교를 마치고 다시 서당에서 공부를 한 것으로 회고하고 있다. 서당에서의 공부가 매우 힘들었지만, 향파에게 있어, 시작 시간만큼은 재미가 났다는 것은 시적 감수성과 재능은 남달랐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시에 대한 재주가 이후에 그의 문학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가 지닌 상상력의 신장은 그의 문학 활동이 시, 소설, 희곡, 아동문학, 연극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인다,

향파의 유년기 문학 수업이 시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시적 감수성의 발견과 훈련에서부터 문학 수업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은 향파의 근본적인 인간 이해가 풍성한 인간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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