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㉒ 바다가 건강해야 섬도 여행객도 행복하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㉒ 바다가 건강해야 섬도 여행객도 행복하다
  • 김준 박사
  • 승인 2019.12.0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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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진해만이 뜨겁다. 늦기 전에 대통령의 섬, 저도를 찾는 사람, 시원한 대구탕이나 물메기탕을 탐하는 사람 그리고 섬밥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수도를 가려는 사람까지. 덩달아 어민들도 대구를 잡는 호망을 손질하고, 물메기를 잡는 대나무 통발을 깁느라 손길이 분주하다. 그들 사이를 지나 이수도로 가는 도선에 올랐다.

이수도는 거제시 장목면 시방리에 속한 섬이다. 섬의 모양이 장목면 대금산으로 날아가는 학을 닮아 학섬 혹은 오리섬이라 했다. 시방리 살방마을 부녀자들이 불렀다는 노동요 ‘살방깨발소리’에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에 나오는 ‘새섬’이 학섬이다. ‘깨발’이란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갯벌에서 굴, 조개(바지락), 미역, 파래 고둥 등 자생하는 해초나 패류를 채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수도는 시방리 살방마을에서 도선으로 10분거리 600m 떨어져 있는 50여 세대에 100여 명이 거주하는 어촌마을이다. 진해만이 그렇듯이 주변해역은 난류성 어족이 대부분이지만 겨울철에는 한류성 어족도도 회유한다. 그 중 정치망으로 멸치, 대구, 고등어, 삼치, 대구 등을 잡고, 김, 미역, 굴, 피조개 등을 양식하고 있다. 특히 겨울에 대구와 물메기, 봄에 도다리가 유명하다.

이수도 마을, 바다 건너 마을이 살방마을이다.
이수도 마을, 바다 건너 마을이 살방마을이다.

 

물이 좋은 섬에서 섬밥상으로

‘작은 섬에 이렇게 좋은 물이 많이 날 수 있나’해서 ‘이물(利勿)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물도는 조선영조 45년(1769) 처음 등장한다. 1942년 장목면 23개 부락이 만들어질 때 물(勿)을 수(水)로 바꿔 이수도라는 한자지명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노인들은 지금도 이물도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마을펜션이 있는 이수도 분교 근처에서 발견된 패총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세종실록>에 거제현은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고려말 원종 12년(1271)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해 땅을 잃고 백성들을 거창 가조현으로 피난시켰다고 했다. 대마도 정벌 후 1422년(세종 4) 주민들이 돌아왔지만 임진왜란으로 다시 섬을 떠나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사회가 안정된 17세기 이후 거제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수도 현 주민들의 입도조 역시 그 무렵 섬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이수도의 ‘섬밥상’이 알려지면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다. ‘1박3식’ 7, 8만원에 진해만에서 나는 것으로만 한 상을 차려주는 밥상이다. 섬밥상은 방어, 삼치, 도다리 등 계절에 따른 회를 중심으로 키조개, 장어볶음, 생굴, 멍게회, 문어숙회 그리고 도다리쑥국(물메기탕, 대구탕) 등으로 이루어진다.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는 집만 아니라 민박집만 20여 집에 이른다. 하지만 주말이면 방을 잡기 어렵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방을 잡는 것이 로또만큼이나 어렵다.

 

‘돈섬’ 비석을 세워 액을 막다?

이수도방시순석

이수도로 가는 도선장이 있는 시방리는 원래 살방이라 불렸다. 마을 뒤 대금산에서 보면 해안의 모양이 이물섬을 향해 활을 쏘는 형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학을 향해 시위를 당겨 활을 쏘는 형국이라 시방이라 했다. 이수도 사람들은 좋지 않는 일이 생기면 이 풍수를 떠올렸다. 농사보다 바다에 의존해 살아온 섬살이라 마주보고 있는 두 마을은 어장을 두고 경쟁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1932년(壬申年) 11월(음력) 마을대표 6명이 시멘트로 ‘화살을 막는 방패’라는 의미의 ‘방시순석(防矢盾石)’을 마을 뒷산에 세웠다.

그 뒤로 이수도는 어장도 잘되고 자식들도 좋은 일이 생겼지만, 시방리는 어업도 잘 되지 않고, 자식들에게도 좋은 일이 없었다. 시방마을 사람들이 비석을 부수겠다고 몰려갔지만 섬 주민들이 강력한 반발로 오히려 물도 길러다 먹지 못하게 되었다. 고심을 하던 차에 금강산에서 수행을 한 도사가 ‘살방마을은 활인데 살이 없어 기운이 없으니 활을 쏘는 비석을 세우라’는 방책을 알려줬다. 1953년(계유년) 이수도가 잘 보이는 곳에 쇠로 된 화살을 만 개나 갖췄다는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을 세웠다. 이수도에 방시순석을 세운지 21년이 지난 후였다. 이번에는 살방이 고기잡이도 잘되고 자식들도 번성하자 이수도에서 시방마을 비석을 부수겠다고 나섰다. 이후 이수도에서 1959년 기존의 방시순석 위에 쇠 화살을 막을 ‘방시만노순석(防矢萬弩盾石)’을 올렸다.

다행스럽게 거가대교가 개통된 이후 시방리는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고 펜션도 만들어졌다. 이수도 역시 섬밥상을 찾는 사람들로 주말이면 숙박을 예약하기 힘들다. 이수도 주변 어획량은 예전만 못하지만 섬밥상으로 그 가치는 더 높아지고 있다.

정돈된 어망부이들
정돈된 어망부이들

섬밥상에서 섬여행으로

이수도 주변에는 주목할 만한 곳이 많다. 이미 언급한 대통령의 휴양지 청해대 저도가 있고, 대구어장으로 유명한 관포, 외포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대계항, 임진왜란의 격전지 옥포 그리고 유럽의 성을 닮은 ‘매미성’이 있다. 모두 10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다.

이수도는 어촌체험마을을 운영하기도 힘들 정도로 외진 섬마을이었다. 섬밥상이 주목을 받으면서 선상낚시와 갯바위낚시 등 기존의 방문객들 외에 트레킹, 일출, 동아리 모임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수도를 찾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기본이 되었던 것은 섬밥상이다. 진해만을 배후에 두고 마을어장이나 인근 해역에서 철철이 나오는 계절생선과 해초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2018년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섬 33섬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또 찾아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수도 둘레길을 걸으면서 진해만, 거가대교, 가덕도 그리고 가덕등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섬을 찾을 만한 이유로 충분하다. 섬북쪽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내내 진해만과 가덕도 그리고 가덕등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휴가지 청해대와 대죽도와 중죽도를 거쳐 지하로 이어지는 가덕대교도 한 눈에 들어온다. 이수도 사람들은 가덕도를 ‘갈산도’라 불렀다고 한다. 작은 섬이지만 가을철에는 억새가 멋진 가을 풍경을 만들어내고, 봄이면 따뜻한 남쪽의 섬답게 일찍 꽃소식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겨울철에는 역시 대구탕과 물메기탕으로 속을 달랠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이수도에서 새해를 맞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연말이면 예약이 끝나 숙박할 곳이 없다.

배에서 말리는 대구
배에서 말리는 대구

섬재생을 원하면 바다재생이 먼저다

이수도와 가덕도 앞에서 시작해 마산항까지 이어지는 바닷기를 ‘가덕수도’라고 부른다. 그 중 일부는 웅천만에서 만상항에 이르는 길을 부도수도라고 한다. 이를 총칭해서 진해만이라 하는데, 그 안에 웅천만, 행암만, 마산만, 남포만 등 크고 작은 만들이 잇다. 진해만은 큰 만 안에 작은 만들이 이렇게 많이 있고, 이수도, 저도, 죽도, 부도, 잠도, 초리도, 소쿠리섬, 웅도, 연도 등 많이 섬이 있어 어패류들이 서식하기 좋은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톳, 미역, 모자반 등 해조류가 풍성해 청어, 대구, 물메기 등이 찾아와 안을 낳고 서식한다.

겨울철이면 많은 여행객들이 이수도를 비롯해 거제를 찾는 것은 대구와 물메기가 주는 시원한 국물도 큰 몫을 한다. 연말이 다가오면 시원하고 따뜻한 국물이 그립다. 이럴 때 어김없이 거제로 향한다. 그곳에서 시원한 바다와 섬을 돌아보고, 포구마을 식당에서 끓여주는 대구탕으로 한 해 동안 쓰린 속과 고생한 몸을 위로해보자.

가덕도와 거제 사이 대구어장도 위기를 맞을 뻔 했다. 지속적으로 치어방류와 금어기 그리고 어장관리를 통해서 자원이 회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어족자원은 어느 정도 개체가 유지되어야 유전체가 지속될 수 있다. 명태가 이를 잘 말해준다. 대구는 거제의 시어이다. 그만큼 거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수도를 여행객들이 찾는 것은 섬도 섬이지만 바다가 내 주는 밥상에 감동해서이다. 섬밥상을 지키는 것은 바다를 지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면서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다. 다른 곳에서 가져온 식재료가 밥상에 올라간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린다. 큰 펜션도 지어지고, 민박도 규모를 키우고 있다. 작은 섬은 수용력도 크지 않다. 이게 무너지면 바다도 섬도 섬주민도 무너진다.

골목길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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