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은 선박금융 살릴 방안 없나?
주저앉은 선박금융 살릴 방안 없나?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12.0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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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투자 관심유도… 현재로선 ‘과세’ 혜택 필요

[현대해양] 해운업의 요체인 선박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떠나고 있어 해운재건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그간 국책은행에만 의지해 온 선박금융 형태에서 벗어나 풍부한 민간투자의 구미를 끌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등 돌린 민간투자

선박건조 혹은 중고선매입 비용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호가할 정도로 대규모이다 보니 아무리 우량한 선사라 할지라도 선사가 보유한 자금만으로는 충당하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통상적으로 국내외 투자자를 끌어들여 펀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유치한다. 이러한 선박금융은 융자 기간만 수년에서 십수년이 걸린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추진되면서 본격적으로 금융기관이 선박금융에 발을 들였다. ‘조선장려법’에 따라 산업은행이 통크게 50%를, 정부가 보조금으로 40%를 지원하면서 선사는 자기자본 10%면 신조를 단행할 수 있었다. 당시 이자율도 안정적이었기에 민간은행뿐만 아니라 종합금융회사, 리스회사 등이 앞다퉈 참여하면서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선박금융은 황금기를 이어나갔다.

이처럼 세계 7위의 해운강국을 가능케 한 원동력인 선박금융이 이제는 실종됐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여의도에서 선박금융을 하겠다고 하면 이 사람 위험하다는 반응이다”며, “자산운영사에서도 담당 직원은 사라진 지 오래고 과거 추진했던 선박금융 몇 건만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털어놨다. 금융권마다 선박에 대해 투자부에서 태클을 걸고 심사부에서 회유한다고 덧붙였다.

선박금융에 미운털이 박힌 것은 외환위기 이후 유동성 위기가 찾아올때마다 다수의 선박이 매각되는 선례를 남기면서부터이다. 더욱이, 지난 2016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거쳐 파산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선순위 저당권 처리 과정을 통해 선박은 위험한 담보라는 인식이 공고해졌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민간은행의 선박금융 규모는 금융위기 직전인 지난 2007년 3조7,129억 원에서, 2014년 8,749억 원, 2018년 1,400억 원으로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이경래 한국무역보험공사 수석컨설턴트는 지난 10월 선박건조금융법연구회(회장 김인현 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미나에서 “자산운영사를 포함한 우리나라 민간금융 규모가 2,000조원에 이르는데 선박금융을 하는 곳은 20여개사가 남아 있으며, 이들마저 대부분 후순위대출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혹여나 신규 선박투자 건이 나오는 경우는 외국선사에 대한 우량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선박금융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개별투자자에게 허락을 득해야 하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우량한 선박투자 건이 간간히 나오긴 했지만 그때마다 국내 투자자들은 외국계 상업은행에 밀려났다. 지난 2014년 10억달러 규모의 가스공사 LNG선 프로젝트(재융자, Refinancing)에 참여한 국내은행은 산업은행 단 한 곳 뿐이었으며 SMBC, ANZ 등 8개 해외은행들이 시장논리로 독식했다. 지난 2016년 SK해운의 6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도 산업은행만 참여했을 뿐, 해외은행들이 장악했다.

▲지난 10월 25일 부산 해양금융활성화 세미나에서 축사하는 김영춘 국회의원.
▲지난 10월 25일 부산 해양금융활성화 세미나에서 축사하는 김영춘 국회의원.

 

세계도 전반적인 침체 국면

민간투자자들이 선박금융에서 손을 떼고 있는 양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실이 아니다. 선박금융전문매체 마린머니(Marine Money)의 선임애널리스트 캠벨 휴스톤(Campbell Houston)은 최근 여성국제해운물류협회(Women’s International Shipping & Trading Association) 정기포럼에서 “2000년대 1억달러 이상의 수많은 상장 해운기업들이 무너졌다”며, “최근 선박금융을 요구하면 투자자들은 정중하게 거절하며 자리에서 떠나주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00여년동안 선박금융에 적극 가담해 온 ‘HSH’, ‘Royal Bank of Scotland’ 같은 은행사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40% 가량 선박금융을 감축했다고 진단했다.

이런 살얼음판에서도 민간선박금융이 순풍을 타고 있는 나라도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외국을 대상으로 한 선박금융을 진행하고 있는 중국은 현재 외국선사 신조 비중이 사업 포트폴리오의 70~80%를 차지할 만큼 단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세계는 중국에 금융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대륙으로 몰려가는 기세다. 세계 1위의 해운운송 수요가 있는 중국은 안정적인 신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자제한 정책을 단행하면서 민간금융들이 대거 선박금융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에만 선박공급 잔액이 513억 달러, 인출은 132억 달러에 이르렀다.

일본의 경우 세토내해 이마바리 지역 이요은행(Iyo Bank) 등 지방은행들은 선박금융이 자산의 최대 15% 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신용등급이 상당히 우량한 것으로 나타난다.(Iyo Bank = JCR AA/Stable) 이들 은행, 선사, 조선사 주요 관계자들은 매달 미팅을 갖고 사업정보를 공유하는 관계형 금융관행을 이어가고 있으며 오히려 국책 및 민간대형은행이 선박금융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안은 ‘과세’ 혜택

노후선들은 반드시 교체되기 때문에 신조 수요는 꾸준히 나올 수밖에 없는 숙명이지만 우리나라도 경쟁국들과 같이 풍부한 민간자금과 손을 잡지 않고서는 작금과 같이 주저앉은 선박금융이 대반등하기란 불가능하다. 일반적인 기업의 자금 마련책으로 채권과 주식 등이 있지만 160개사 이상되는 우리나라 외항선사 중 이런 방식으로 선박금융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곳이 드문 실정이다. KMI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이들 선사의 채권조달액을 통한 선박확보는 전체 조달액의 10% 미만으로 추정되며, 주식의 경우 상장사가 13개사가 있으나 한진해운 이후 상장된 선사가 단 한 곳도 없으며 실질적으로 기업공개(IPO) 등 공모를 통한 선박금융 실적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스스로 자금조달이 버거운 상황에서 뾰족한 묘책이 없는 국내선사를 위해 제도적 혜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외환위기 이후 2003년 독일(KG), 노르웨이(KS) 등 선진국의 선박펀드를 벤치마킹해 선박투자회사, 선박운용회사, 자산관리회사의 설립과 투자자 보호를 주요 내용으로 제정된 선박투자회사제도와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입 초기부터 펀드 수익률을 6% 수준, 확정배당형으로 설계하는 등 수익성과 안전성 동시에 만족시키며 민간투자자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선박투자회사제도는 2016년에 일몰돼 현재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선박펀드가 운용되어 과세특례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폐지된 제도를 특정 산업을 위해 소생시켜달라는 것은 정부 조세정책의 일관성을 저해하는 등 여러모로 관철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조세특례(Tax Lease)가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몇몇 금융 선진국에서 선박, 항공기, 플랜트 등 대규모 투자에 도입되는 텍스리스는 발생하는 회계 비용을 선사나 투자자가 공유함으로써 법인세의 7~10%를 덜어낼 수 있는 방식이다. 선사도, 투자자도 이득이 되는 것이다.

 

여전히 준비 안 된 한국

만에 하나 서서히 민간투자자들의 관심이 되돌아온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해운업을 대하는 금융권의 인식으로는 또다시 선박금융이 흔들릴 공산이 크다. 불황기마다 유동성 위기를 겪는 선사에 자산(선박)을 매각하라며 채권자들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니 추후에 돈을 벌 수 있는 여지마져 없애버리는 것이다.

국내 한 외항선사 임원은 “금융위기 이전 은행들이 돈을 빌리라며 부나방처럼 붙더니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는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며, “은행이 하라는 반대로 하면 선사의 경쟁력이 생긴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국적 외향선사인 현대상선은 외환위기 등으로 위기가 닥치자 채권자들에 의해 높은 현금매출을 보이는 자동차수송선사업부(지금의 유코카케리어(주))를 15억달러에 매각했으며, 앞으로 안정적인 수익이 예상되는 LNG운송사업도 지난 2014년 유동성 위기시 사모펀드 ‘IMM인베스트먼트’에 10억달러에 매각했다. 장기적인 수익성은 무시하고 불황기에 볼모로 잡은 선박을 매각하거나, 조기상환하라며 압박을 가하니 선사들도 경쟁력을 축적할 수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민간금융의 싸늘한 반응을 되돌릴 수 있는 대책 마련과 함께 해운업에 대한 인식 변화가 진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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