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어망 업사이클링이 주민 관계도 개선시켰다
폐어망 업사이클링이 주민 관계도 개선시켰다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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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촌어항공단, 보령시 송학1리 지역역량강화사업 호평
▲지난 8일 충남 보령시 송학1리 주민들이 한양여대 산업디자인과 학생들과 폐어망을 활용해 야간조명을 제작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8일 충남 보령시 송학1리 주민들이 한양여대 산업디자인과 학생들과 폐어망을 활용해 야간조명을 제작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현대해양] 어촌에 버려져 방치된 폐어망이 마을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작품으로 부활했다. 이 아이디어의 기획, 구상, 디자인, 제작 전 과정을 마을주민들이 주도하면서 주민들간의 관계까지 개선돼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8일 충남 보령시 송학1리 일원에서 한국어촌어항공단(FIPA, 이사장 최명용)은 2019년 보령시 일반농산어촌개발 지역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어촌현장포럼’을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도시농산어촌개발계획 공공컨설팅 전문회사인 ㈜신농씨(문경희 대표이사)가 용역 전반을 주관한 가운데, 한양여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및 학생들도 참여했다.

 

이례적인 지역역량강화사업 호평

이날 이른 오후부터 송학1리 주민 30여명은 노인경로당에 모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10월 초부터 애정을 쏟아부으며 구상한 야간조명을 한양여대 학생들과 직접 제작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겨울 언저리 다소 추운 날씨를 잊게 해줄 온돌침대, 온돌장판, 온풍기 근처에서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이 기구들은 주변 발전소, 농어촌 관련 기관·단체로부터 지원받은 것들이라고 했다.

1980년대 인근 국내 최대규모로 보령화력발전소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마을 주 생업이던 김 양식이 중단됐고 주민들은 점차 도시로 흩어졌다. 현재 농업, 축산 등으로 생업을 전환한 87세대 주민들을 위해 발전소를 필두로 주변 공공기관은 마을시설·장비, 생필품, 나아가 집집마다 반찬까지 챙기겠다며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다행히 생활환경은 나아지긴 했지만 문제는 개인주의 분위기가 이 마을에도 엄습하면서 이웃 사이가 예전 같지 않아졌다고. 천양희 이장은 “그간 일년에 한두 번 하는 꽃밭가꾸기, 풀베기, 마을청소에 4~5명 나오시는 경우가 많았고, 마을 공동행사가 열려도 주민 모으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물질적인 지원만 제공하면 된다는 공공기관의 발상은 요원해진 주민들 간의 연결고리까지 좁혀주진 못했다.

송학1리 주민들은 유관기관·단체가 진행하는 지역역량강화사업도 여러 차례 받았다. 하지만 전문강사의 갈등관리 이론학습과 간단한 실습이 대부분이었고, 선진 농어촌마을을 둘러본다며 어딜 다녀오는데 그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 교육에서는 확연히 주민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분위기다. 천 이장은 “주민들이 이렇게 먼저 와서 기다리는 행사는 거의 없었다”며, “우리가 스스로 낸 아이디어를 현실화 한다는데 주민들의 기대치가 높다”고 밝혔다.

▲ 천양희 이장(왼쪽 첫번째)과 강동선 교수(오른쪽 첫번째)
▲ 천양희 이장(왼쪽 첫번째)과 강동선 교수(오른쪽 첫번째)

 

대표아이템 발굴로 공감대 형성

주민 주도 기획이라고 해도 오직 주민들만 모여 워크샵, 회의를 한다면 아이디어가 한정적이고, 응집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여러 아이디어 중 주민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내기도 힘들다. 이에 한국어촌어항공단은 어촌 공간 디자인에 강점이 있는 한양여대 산업디자인학과 김종열, 강동선 교수를 10월초 프로그램 첫 단계부터 조력자로 활동하도록 요청했다. 한국어촌어항공단은 지난 6월 한양여대와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강동선 교수는 “전문가로서 무엇을 만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멈추고 주민들의 생각에 집중하며 아이디어를 끄집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밤길 보행이 가장 큰 장애요소라며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오후 5시만 되도 깜깜해지기 시작해 곧 마을이 칠흑같은 어둠으로 덥혀 지는데 포장도 잘되지 않은 길을 따라 각자 집으로 가야 할 때마다 각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고. 이에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가장 어두운 장소가 어디인지 찾아 ‘마을 두려움 지도’를 제작해 개소마다 설치했다.

천 이장은 “주민들이 내가 사는 마을에 공헌하고 싶어 했는데 무엇을 시작해야 좋을지 몰랐던차에 진행된 프로그램이어서 의미가 깊다”며 “이런 과정 속에서 주민들 간 친밀감도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했다. 주민 개개인이 그간 느꼈던 불편함을 공유하면서 주민들 간의 긴장감을 풀고 해결을 통해 결속력을 다질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제 싹이 튼 주민들의 결속력에 꽃을 피울 수 있게 할 촉매제가 필요했다. 이에 여기서 멈추지 말고 특별히 어두운 사각지대를 비출 야간조명을 직접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주민들은 마을하면 발전소, 바지락, 노인, 꽃 등을 주로 떠올렸는데 밤길을 비추는데 그치지 않고 조명을 마을의 특색을 나타내는 상징성 있는 작품으로 승화시켜 보자는데 의견이 결집됐다.

▲ 제작한 야간조명을 들고 설치장소로 이동하는 모습
▲ 제작한 야간조명을 들고 설치장소로 이동하는 모습

이 가운데 어촌마을의 썩지않는 폐어망을 세련된 패션아이템으로 탈바꿈시키는 자원 업사이클링 활동으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강동선 교수가 디자인할때부터 폐어망을 활용하고 신재생에너지를 가미하자고 제안했다. 주민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하며 가시화되는 조명에 대한 기대가 무르익어 갔다.

이렇게 발굴된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드로잉 작업을 거쳐 도안을 만들어야 했다. 이때부터 한양여대 산업디자인 전공 학생들도 참여하여 주민들이 백지에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거들었다. 학생들과 부대끼는 가운데 주민들은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변해갔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다. 문유빈 학생은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을 걸으며 곳곳의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마을을 미래를 그리면서 즐거움을 알게 해 드린데 감동을 느낀다”며, “마을을 잘 디자인하는 것은 사는 사람들의 삶과 생활이 쌓여 형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이와 같은 공간 디자인 재능기부 행사가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서울시 성동구 여성안심골몰길 만들기, 2017년 경남 거제시 거제다대포항 마을환경 개선사업, 2018년 전남 영광군 낙월도 업사이클겔러리 조성사업, 2018년 서울시 종로구 취약계층 마을 환경 개선사업 등 지역과 연계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 제작한 야간조명을 설치하고 있다.
▲ 제작한 야간조명 설치 작업

 

결과적으로 주민관계 디자인으로

이제껏 구상한 작품을 직접 제작해 마을에 설치해보는 날이 돌아왔다. 지난 8일 오후 마을에 도착한 대형버스에서 폐어망, 태양열전구기자재, 꽃모양제작툴을 든 교수들과 22명의 학생들이 주민들과 반갑게 재회했다. 그간 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주민들은 꽤 친해져 있었다.

폐어망은 주변 태안해변에서 수집해 그물을 제거하고 화단에 설치하기 용이하도록 받침대를 붙인 것이었고 쉽게 구부러지는 플라스틱 조각으로 구성된 꽃모양제작툴은 순서대로 조립하기만 하면 쉽게 완성됐다.

오후 내내 공들여 제작된 우아하고 햐얀 꽃모양 조명은 존재만으로 주변을 환하게 했다. 주민들과 학생들은 조명들을 마을 가장 어두운 장소에 직접 설치했다. 지나가던 트럭 운전자도 잠시 멈춰 서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간다. 조명 주위로 주민들과 학생들도 서로 그간 노고에 감사를 하며 함께 사진에 추억을 세겨 넣었다.

이번 지역역량강화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자신감과 확력 제고가 가장 큰 실적이다. 김종열 교수는 “이번 프로그램은 다자인이 인간관계의 가치를 다시 회복하고 무감각해진 주민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활동이었다고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단순히 조명을 통해 마을을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인간관계를 디자인한 것이다.

한국어촌어항공단은 이와 같은 재능기부 활동을 1회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진해 어촌마을 삶의 질 향상에 실질적인 효과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어촌지역 특화된 사회가치 실현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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