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자연재앙
국경없는 자연재앙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3.09.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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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낚기선 H호의 날벼락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20여 년 전, 만선의 꿈을 안은 원양어선 H호는 아프리카 중서부 기니 만(灣)을 뒤로하고 어장인 적도 해역을 향해 전속력으로 배를 몰았다. 참치캔 원료인 가다랭이(Skip-Jack) 떼를 쫓는 채낚기선(Pole-Fishing Ship)이었다.

마침 몇 달씩이나 추적거리던 우기(雨期)도 끝난 참이어서 오랜만의 쾌청한 날씨를 본 정(鄭) 선장은 이번 항해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시방 앞 갑판 두 수조(水槽)에는 간밤에 잡은 활(活) 멸치가 하나 가득 펄떡거리고 있었다.

가다랭이는 대양에서 먹이사슬의 중간에 해당하는 물고기로, 떼를 지어 다니며 역시 무리를 이룬 정어리나 멸치떼를 포식하는 육식성 어류다. 어군은 수십 톤에서 많게는 수백 톤에 이를 만큼 말 그대로 매머드 형 군집성(群集性)을 가진 물고기다.

이를 본 어느 스페인 어부가 채낚기라는 신종 어법(漁法)을 개발해 대량어획에 성공하면서 물꼬를 텄고, 이에 일본과 한국의 부들까지 하면서 한때 대서양 바닷물을 말릴 만큼 수십 척이 출어경쟁을 벌여 가히 채낚기어업의 신드롬 현상을 불러오기도 했었다.

작업 요령은 이렇다. 대양 한복판으로 나온 채낚기선 선원들은 마치 포경선(捕鯨船)처럼 높다란 망대(望臺)에 올라 쌍안경으로 사방 바다를 두루 살핀다. 그러다가 하얀 물결(어부들은 이를 잔파라 한다)을 일으키는 가다랭이 떼를 발견하면 살그머니 다가가 아직도 살아 팔딱거리는 멸치를 뿌려대며 혼을 쏙 빼낸 상태에서 아주 잘 숙달된 어부들로 하여금 미늘 없는 낚시로 마구잡이 낚아채 올리는 방식이다. 가다랭이 입장에서는 싱싱한 활 멸치가 눈앞에서 마구 뜀뛰기를 해대니 이웃 동료가 낚시에 채여 사라지는 판국에도 곁눈질할 겨를 없이 포식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면 어창에는 미끄럼틀을 탄 어획물이 수십 톤 내지 수백 톤씩 차올라 있는 것이다.

한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말하자면 고기(가다랭이)를 잡기 위해 그 유인물인 멸치를 확보하는 일인데, 마침 아프리카 기니 만 연안에는 집어등(集魚燈)만 밝히면 호광성(好光性)인 멸치가 떼로 몰려들어 하룻밤이면 두 개 수조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풍년을 이룬다. 그렇게 정 선장은 휘파람이라도 부르고 싶은 마음으로 이제 하루거리의 어장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활 어창을 살피고 난 갑판장이 헐떡거리며 달려와 멸치가 떼거리로 배를 뒤집고 있다는 날벼락 같은 보고를 해온 것이다.

정 선장은 그 원인을 곧 알아냈다. 청징한 쪽빛을 띠고 있어야 할 부근 바닷물이 마치 황토를 푼 것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는 것이었다. 그거야말로 열대지방의 높은 기온에다 장기간 우기로 플랑크톤이 이상번식하는 적조현상(赤潮現象)인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멸치에게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준답시고 밤새도록 독극물에 진배없는 적조를 계속 주입하였으니 지금 보는 것과 같은 집단폐사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기니 만을 낀 가나공화국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와 마찬가지로 본초자오선(本初子午線)이 통과하는 전형적 열대우림 지역으로, 1966년 아코솜보 댐이 완공되면서 내륙이 거대한 볼타 호수로 변했다. 거기에 몇 달씩 우기가 이어지자 강이 범람했고, 유기물이 다량 함유된 강물이 기니 만으로 흘러들면서 지금 보는 것과 같은 고질적 자연재앙이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었다.

한순간 자연재앙으로 멸치가 몽땅 폐사하자 H호는 부득불 뱃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손해가 얼마인가.

재앙은 비단 H호에 국한되지 않았다. 20여 년 전, 그 날의 재앙은 대서양을 어장으로 한 모든 채낚기선에 똑같은 비운을 안겨주어 이후 채낚기 조업이 시들해지면서 지금은 불과 몇 척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처지다.

강도 바다도 모두 죽어간다

얄궂은 자연의 심술은 한반도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난 7월 중순부터 남해안 일대에 번지기 시작한 적조현상은 8월 들면서 해운대 앞바다를 거쳐 강원 지역 동해안까지 무서운 기세로 북상했다. 그 날벼락에 청정해역으로 명성을 드날리던 통영과 거제 등지의 양식장에서는 실로 천문학적 숫자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고, 그로 인한 피해액이 15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보고에 따르면, 이 같은 자연재앙은 9월 들어서도 그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을 태세이며, 예년과 달리 초가을인 10월까지 맹위를 떨칠 것이라 한다. 그렇게 되면 전국적으로 1천억 원을 훌쩍 넘어서는 사상 초유의 적조피해 기록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낙동강을 강타하고 있는 녹조현상(綠潮現象)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녹조 역시 적조와 마찬가지로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 더욱 기승인데, 특히 아나베나(anabaena)라는 남조류(藍藻類)가 다량 번식하면서 악취와 함께 수질(水質)까지 악화시켜 심하게는 수돗물 공급에도 차질을 야기하는 변괴를 불러오고 있다.

올 여름은 지독한 염천이었다. 전국 곳곳이 경쟁이라도 하듯 섭씨 40도를 훨씬 웃도는 가운데 낙동강 중상류 칠곡보에서는 페인트를 쏟아 부은 듯한 진초록 댐물이 넘실거렸고, 달성보에서는 개구리밥과 같은 하등조류가 식수원을 온통 반죽으로 만들었다. 이를 본 환경단체 등은 그 원인이 ‘4대강 탓’이라 우겨댔고, 그럼에도 당국은 ‘과거에 더 심한 경우도 있었다’는 식으로 애써 그 심각성을 깎아내렸다.

이 같은 무차별적인 자연재앙의 횡포에 인간은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껏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는 북태평양고기압이 기세를 꺾어 본래 고향인 서부태평양의 필리핀 앞바다로 물러나기만을 기다리는 처지다.

바다든 강이든 물이 살아야 인간도 공존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 탓이 분명한, 한여름철이면 국경도 없이 기웃거리는 비운의 자연재앙에 대처할 궁극적 묘안은 결국 없는 것일까.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주무부처인 해수부는 전문연구·조사기관인 수산과학원장 후임 인선을 미루고 있어서 말썽을 부채질한다. 지난 3월 말, 손재학 전 원장이 차관으로 영전한 이래 벌써 다섯 달째다.

사공이 없는 배가 안전항해를 담보할 까닭이 있을까. 그저 흐르는 물에 맡겨두어도 물레방아는 돌아간다는 것인가. 지금처럼 속수무책인 자연재앙을 두고 더욱 심란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원고가 인쇄되어 나올 무렵에는 역량과 책임감을 겸비한 적절한 조타수(국립수산과학원 원장)의 지명 소식이 전해지기만 고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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