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류양식 '잃어버린 20년' 탈출구는 없는가?
어류양식 '잃어버린 20년' 탈출구는 없는가?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13.09.1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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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업 共滅 ,共生의 갈림길에 섰다

▲ 김성욱 본지 발행인
최악의 여름을 보냈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더웠다. 35~36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 더위를 견디느라 서민들은 지칠대로 지쳤다. 설상가상, 서남해안을 덮친 가뭄으로 논밭이 갈라지고 바닷물도 뒤집혔다, 고수온에, 적조에, 양식 어업인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버렸다.

연안에는 고기씨가 말랐다. 가을 성어기에 접어든 권현망 멸치잡이도 예년의 20% 수준에 머물렀다. ‘8월 흉어’라는  믿기 싫은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고등어도 안잡힌다. 선망어업, 저인망어업, 할 것 없이 모두가 흉어에 속이 탄다.

남해안 양식어업은 거의 절멸상태에 빠졌다. 대통령이 적조피해현장을 직접 찾아나설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적조현상을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중장기 대책을 마련하라는 박대통령의 지시를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를 동시에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육상에서 흘러들어오는 오폐수와 생활하수를 제대로 정화하지 못한 지자체와 정부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지만, 어장관리를 제대로 하지않은 양식어민들의 책임 또한 결코 작지않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양식장 바닥은 황폐한 사막 같고 바다 정화사업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양식어업면허 정비작업은 기존 어민들의 저항에 부딪쳐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져 있다. 금년 여름이 지나면 파산으로 내몰리는 양식어업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쥐꼬리 보상금에 빚까지 얻어 텅 빈 가두리를 채우고, 또다시 하늘만 바라보는 어민들이 몇 명이나 될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산물 소비도 격감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도 20% 이상이나 매출이 감소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적조 뿐만이 아니라 ‘그 놈의’ 후쿠시마원전 때문에 명태는 고사하고 고등어, 오징어까지도 찾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가을에 접어들면 적조현상은 게눈 감추듯 사라지겠지만 후쿠시마원전의 방사능 괴담은 점점 더 확대 재생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어서 이러다가는 새 정부가 내세운 「수산업의 미래 산업화」라는 국정과제마저 모래성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지금이야 말로 결단이 필요한 때다. 해얀수산계 모두가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격언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창조적 파괴’라는 자기희생적 헌신이 없다면 연안 양식어업은 자멸(自滅)의 길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눈 앞의 작은 이익에만 얽매여 다 함께 공멸(共滅)하는 길로 빠져들 것인지, 아니면 차제에 어업질서와 법규를 재정비하여 공생(共生)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그 숙명적 선택이 우리 어업인들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실천의지, 자기희생적 결단이 필요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는 이벤트가 있다. 수산물 소비촉진 켐페인이 그것인데, 온갖 재해에 시달리는 어업인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도록 안타깝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시행정, 정치쇼를 보는 것 같은 허탈함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올 해도 어김없이 수산물 소비촉진 켐페인이 개최되었다.

지난 8월13일 국무회의가 끝난 후 서울청사와 세종청사에서 동시에 “물회 시식행사‘가 벌어졌다. 적조가 수산물 위생과 인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않을 뿐만 아니라 비브리오폐혈증도 수돗물로 깨끗이 조리하면 건강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도자들이 직접 나서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나름대로 효과적인 켐페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유(類)의 퍼포먼스도 반복 시행하면 할수록 그 효과가 현저하게 체감(遞減)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 8월22일부터 시작된 수산물 직거래행사도 소비자들의 눈에는 ‘그들만의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비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2년전 낙지 중금속 파동 때도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나서서 낙지시식 퍼포먼스를 벌였고, 지난 해에는 노로바이러스 파동으로 굴양식업이 파산위기에 내몰리자 여기 저기서 굴 시식회를 개최했던 사실들을 소비자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그리고 그토록 갈망했던 해양수산부가 탄생했어도, 수산정책은 타이틀만 거창하게 바꿔달았지 무엇 하나 어업인들의 가슴에 와닿는 알맹이가 없으니 정말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 우리나라 수산업, 특히 양식어업이 ‘잃어버린 20년’의 암흑 속을 헤메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정부당국도 속속들이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시방편적인 대증요법(對症療法)만으로는 우리 수산업이 절대 회생할 수 없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과거 수십년 동안 쌓아온 처방전을 어업인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합리적이고 단호한 실천의지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어업구조와 조업구역의 재편, 어업면허의 재정비, 수산물 유통구조의 대개혁, 원양산업의 발전전략 등, 해 묵은 난제(難題)들을 해결하기 위해 수산당국과 수산계가 스스로 껍질을 깨는 탈각(脫殼)의 아픔을 감내하지 못한다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공멸(共滅)의 길로 들어 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MB정부 시절 장태평 농수산부 장관은 공직자들의 자기희생적 반성을 촉구하는 결연한 의지를 천명하여 농수산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아일랜드의 명문 오닐가(家)」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말타기 경주로 토지 지배권을 다투던 시절, 뒤쳐져 달리던 오닐가의 대표는 결승선에 이르러 자신의 손목을 잘라 결승선으로 내던짐으로써 앞서 가던 경쟁자를 물리치고 1,500년동안 토지 지배권을 획득했다는 아일랜드의 전설적 얘기를 예로 들면서 공무원들의 탁상행정, 갑의 횡포, 무사안일을 강하게 질타했다. 수산계 전체가 다시 한번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조직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 그리고 갑의 횡포 보다 더 심각한 ‘을의 몽니’, 기득권자의 횡포, 등등이 우리 수산업 발전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사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공직자든, 수산단체든, 어업자든,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여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수산업은 재도약의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고 말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바늘 가는 곳에 실이 가듯 해양수산인과 공직자의 화합과 자기희생적 결단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한 때다. 그 길이 바로수산업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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