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와 영감
마누라와 영감
  • 편집부
  • 승인 2013.08.1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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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는 지체 높은 상전을 일컫던 ‘극존칭’
‘영감’은 나이에 관계없이 ‘관원’을 이르던 말

흔히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다. 적어도 말을 볼 때에는 맞는 듯하다. 합쇼체에서 해라체까지 상대가 누구냐에 따른 높임말이 여러 단계가 있으니 말이다.우리나라 말은 높임말이 복잡한 만큼 사람을 지칭하는 말도 아주 복잡한 편이다.

상대방이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결혼여부에 따라, 생사여부에 따라, 벼슬유무에 따라, 그리고 화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각각 동일한 인물을 다르게 부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자를 지칭하는 말로 아내, 여편네, 마누라, 집사람, 계집, 부인, 처녀 등 꽤나 많다.

마누라는 극존칭

‘마누라’는 지금은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지칭할 때나 다른 사람의 아내를 낮추어 지칭할 때 쓰이고 있다. 그런데, ‘마누라’는 원래 ‘임금이나 왕후를 일컫는 극존칭’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의미가 현격히 달라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어원만큼은 애초에 극존칭이었다는 것.


‘마누라’는 ‘마노라’에서 왔다. ‘삼강행실’과 ‘역어유해’ 같은 옛 문헌에서도 ‘마노라’가 보이고 ‘계축일기’에서는 ‘선왕 마노라...’라는 구절이 보인다. 그러니까 ‘마노라’는 상전이나 임금처럼 지체가 높으신 분을 지칭하는 극존칭의 말이었다. 성별에 관계없이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호칭이었고, 백성이 임금이나 왕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이 낱말은 여자 상전만을 지칭하는 말로 의미 변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마노라님’, ‘마나님’, ‘마님’등의 호칭으로 쓰였다. 극존칭의 마노라가 아내를 지칭하는 말로 변하고 다시 '마누라'가 되어 아내를 아주 낮추는 지칭어로 급격한 의미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영감은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원’을 부르던 말

반대로 남자를 뜻하는 말로 ‘영감’이라는 말이 있다. TV 사극에서 노인이 젊은이에게 ‘영감’이라고 부르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다. 본디 ‘영감’은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원’을 부르던 말이었다. 지금처럼 노인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기업이나 국회 등에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회장, 국회의원 같은 윗사람을 영감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나이 많은, 혹은 노인의 뜻이 담겨있다. 반면 법원에서도 판검사를 영감으로 부르기도 한다.

종합해보면 마누라는 극존칭에서 낮춤말로 변했고, 영감은 관원을 지칭하는 뜻에서 노인 정도로 일컬어지는 의미 변화가 있었다. 이처럼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의미가 급변한 단어들이 꽤 있다. ‘여편네’가 또 하나의 예다. 요즘 자신의 부인을 상스럽게 낮춰 부르는 ‘여편네’는 한자어다. ‘남편’의 상대어인 ‘여편’에다가 ‘집단’을 의미하는 접미사 ‘네’를 붙인 것으로 상스러운 뜻은 본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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