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㉑ 흑산도, 옛 영화를 찾으려면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㉑ 흑산도, 옛 영화를 찾으려면
  • 김준 박사
  • 승인 2019.11.08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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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흑산면 예리
흑산항

바다에서본 법성포 어시장 모습

흑산도의 관문은 예리항, 홍도에 들어온 배가 머물다 떠났고, 목포에서 들어온 막배가 도착했다. 이 배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아침에 떠날 것이다. 최소한 당일 목포에서 일을 보고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해서 마련한 배다. 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흑산길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때부터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홍어잡이 선주들이다. 태도바다는 홍어가 산란을 위해 찾는 모태와 같은 바다다. 그 바다에 산란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홍어는 짝을 찾다가 혹은 짝짓기를 하다가 최후를 맞기도 한다. 심지어 교미 중에 함께 잡히는 불운한 홍어도 있었던 모양이다. 《자산어보》에 ‘교미를 할 때 수컷의 꼬리가시를 이용해 암컷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한다. 더러 암컷이 낚시를 물고서 엎드려 있으면 수컷이 다가와 교미를 한다. 이때 낚시를 들어올리면 수컷도 함께 따라 올라온다’고 했다. 수컷의 식욕도 문제지만 인간의 탐욕도 만만치 않다.

한 무리의 여행객이 배에서 내려 흑산관광협회 라고 적힌 버스에 오른다. 흑산도에 이런 버스가 OO대가 있다. 버스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탈수 있는 승합형 택시도 있어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이용할 수 있다. 11월이 깊어지면 여행객도 발길이 묶이고, 여행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숙박업, 식당, 버스 그리고 홍어판매도 봄까지 휴어기에 들어간다. 이때가 홍어잡이가 시작된다.

 

예리에 ‘파수들었다’

예리는 흑산도의 중심이다. 여객선터미널, 학교, 면사무소 등 행정기관과 교통의 중심이며, 흑산시장까지 위치해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며 머무는 곳이다. 섬 여행객들이 찾는 섬이 되기 전에는 팔도의 뱃사람들이 봄이면 예리마을에서 조기잡이를 시작했던 곳이다. 오랜만에 이른 새벽 예리항 뒷골목을 배회했다. 파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골목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부족함은 없다. 지난 반세기 개발사업은 선창의 역사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바꿔놓았다. 우려일지 모르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흔적들도 어촌뉴딜이 싹쓸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몇 년 전 일본의 세도나이가이의 한 섬에서 선창에 연대표 축조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우리는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지만 찾기가 어렵다.

흑산 조기파시가 있었던 예리마을
흑산 조기파시가 있었던 예리마을

당시 조기잡이 배들이 예리항을 가득 메웠다

홍어잡이가 끝나고 하늬바람 끝에 온기가 느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간단한 세간을 배에 실고 한껏 멋을 부린 아가씨들이 흑산도를 찾았다. 이들이 선창 빈자리에 자리를 잡으며 어김없이 팔도의 조기 배들이 흑산어장을 찾았다. 흑산도 조기어장은 2월부터 5월까지 이어졌다. 예리항을 가득 메운 배로 예리와 진리를 밟고 오갔을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사진을 보면 주민들이 들려주는 당시 이야기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리의 서당골에는 송도관, 만춘옥, 남일관 등 요리집이 들어섰다. 이를 흑산도 사람들은 ‘파수들었다’고 했다. 흑산어장에는 조기파시 외에 고래파시, 고등어파시 등이 이어졌다. 조기의 이동로를 따라 조기잡이 배를 따라 임시로 형성되는 파시는 많았지만 특히 흑산도, 위도, 연평도 파시를 3대파시로 꼽는다.

조기파시가 끝나면 7월과 8월에 고등어 파시와 10월에 삼치파시가 이어졌다. 1987년 6월에도 술집, 밥집, 여관, 찻집이 즐비했고 술과 함께 뱃사람들의 욕정을 채우던 ‘흑산갈매기’도 100여 명쯤 있었다(뿌리깊은 나무, 한국의 발견). 지금은 매립되어 모습을 찾기 어렵다. 예리노인당으로 들어가는 반달 모양 골목길에는 당시 우편국, 교회당, 어업조합 등 공공건물과 잡화, 주점, 이발관, 숙박업소 등이 자리했다. 특히 주점에는 빠짐없이 2-3명의 작부들이 상주하며 거친 뱃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예리항 1964년 당시 수산청이 이곳을 어업전진기지로 선정하여 개발하면서 동지나어장을 오가는 어선들이 머물러가기도 했다.

박득순 미술관
박득순 미술관

《자산어보》 비지팅센터는 어떤가

흑산도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자산어보》이지만 이 역시 존재감에 어울리는 흑산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자산어보》보다 10여년 앞서 진해만의 어류를 기록한 김려의 《우해이어보》가 있다. 창원시 음지도에는 《우해이어보》를 기초로 조성한 어류생태관이 있다. 1층에는 『우해이어보』 전시, 바닷물고기 수족관, 전시관, 교육실 등이 있고, 2층에는 민물고기수족관, 터치풀, 낚시놀이터, 물고기도서관, 영상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터치풀은 아이들이 직접 어류를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만질 수도 있다. 흑산도에도 손암이 유배생활을 한 흑산도 사리마을에도 유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대리석으로 자산어보에 나오는 해양생물과 유배인들을 조형물로 만들어 세웠다. 예리마을에는 이름만 있는 ‘자산문화관’이 있었다. 어린이 도서관으로 특화했다가 이마저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최소한 예리마을에 《자산어보》와 손암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대둔도에는 손암에게 결정적인 전통지식을 전달한 장창대가 태어난 오리마을이 있고, 우이도는 손암이 말년에 동생을 기다리며 머물다 죽음을 맞은 곳이자,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역정을 듣고 《표해시말》을 기록한 곳이다. 자산어보에 기록한 생물들이 지금도 흑산바다 곳곳에 서식하고 있다. 이 모든 곳이 흑산도로 집중되어 있는 에코뮤지엄이다. 이보다 좋은 자원이 있을까, 흑산도 관광의 활성화를 외치며 엉뚱한 계획에만 목매며 소중한 역사문화자원이자 어촌경관을 방치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흑산도 비지팅 센터의 내용의 핵심을 《자산어보》에서 가져와도 좋을 것 같다. 이보다 흑산의 가치를 역사와 문화로 승격시킨 걸작이 또 있던가. 당연히 흑산주민의 섬살이가 주된 내용이 되어야 한다.

사리마을 사촌서당
사리마을 사촌서당

흑산스럼을 파괴하는 여행문화

흑산도는 여행객 30만명이 찾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섬여행지이다. 20여 년만에 개통된 해안도를 따라 고래·파시·철새·미술관·유배공원·인물(정약전, 최익현, 김이수 등) 그리고 사리· 심리·예리·진리 등 마을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것이 없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 흑산홍어와 막걸리를 맛보기 위해 오는 사람 등 다양하다. 한 개의 섬에 이렇게 다양한 자원이 있는 섬 또한 찾기 쉽지 않다.

이러한 흑산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은 말할 필요도 없이 예리가 되어야 한다. 최소한 예리에 제대로 된 여행자를 위한 방문자센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버스에 오르기 바쁘다. 여행객 대부분 여행사가 모객한 단체여행객인 탓이다. 이게 무슨 문제인가. 많이 와서 돈을 쓰면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그 결과 흑산자원을 엮고 스토리를 만들어 낼 프로그램이 없다. 당연히 지역해설사가 설 자리가 없다. 개별여행객이 찾지 않으니 요즘 대세라는 게스트하우스가 자리 잡기 어렵다. 흑산 음식보다는 가격에 맞춘 밥상으로 상차림을 해야 한다. 그 결과 흑산의 특징이 사라지고 있다. 적게는 겨울철, 많게는 6개월은 여행객이 없거나 뜸하니 성수기에 벌어야 하는 먹고사는 어려움도 있다. 이러다 보니, 여행객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예리 중심의 어촌마을은 숙박, 교통, 식당 그리고 홍어판매까지 함께 하지 않으면 흑산에게 견디기 어렵다.

최근 정약전과 섬 청년 창대가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벗의 우정을 나누며 조선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함께 집필하는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아쉽지만 이 영화는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한 신안군 흑산면 흑산도 사리마을도, 도초면 우이도 진리마을도 아니다. 장창대가 태어난 대둔도 오리마을도 아니다. 신안군 자은면 둔장리를 중심으로 촬영하고 있다. 실제 두 인물의 활동지에서 촬영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는 것이 욕심이라는 것은 알지만 내내 아쉽다.

흑산스러움은 많이 사라졌지만, 다행스럽게 찰진 흑산홍어와 막걸리를 마실 곳은 있다. 또 흑산시장이라는 간판도 올렸다. 배를 기다리는 여행자들이 시장 안으로 들어가 식사도 하고 특산물을 구입한다. 특히 우럭과 홍합과 미역이 인기다. 만약 이들이 흑산도를 둘러볼 때 흑산도의 섬과 바다의 가치를 제대로 살펴보고 감동을 받았다면 이들이 사가는 보따리는 더 크고 지갑은 더 많이 열렸을 것이다.

정약전의 유배지 사리마을
정약전의 유배지 사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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