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 “바다 잃어 식민 된 역사 교훈 잊어선 안돼”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 “바다 잃어 식민 된 역사 교훈 잊어선 안돼”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9.11.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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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의식 제고·해양문화 진흥에 앞장

[현대해양] 지난 2007년 2월 14일 수협중앙회 2층 강당에서 우리바다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주제로 강의가 있었다. 당시 강사는 서두에서 바다의 천출로 내몰린 갯것들의 생활터전이 문화사적으로 철저히 소외되어, 역사는 있되 기록은 없는 유사무서(有史無書)의 존재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또한 역사의 재구성은 어려우나 생활사, 구술사, 일상사, 민속사 등을 통해 거대한 바다의 문화와 역사를 복원해 가야한다고 강조하며 수산박물관의 설립을 제의했다.

이 날 이 자리에 있었던 어느 수산인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자리였다고 고백했다. 수산인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비수산인이 기발하게 제안했으니 말이다. 갯벌에 내팽개쳐진 닻과 썩어가는 고선, 어가 헛간에 나뒹구는 신석기 시대에 사용된 자돌어구(刺突漁具), 어전, 어살, 석전 등의 원시적 어구나 골조침, 철조침 그리고 마사나 갈피를 이용한 망어구 등 오래된 여러 종류의 어구들이 다 우리 수산사의 보물이라는 것이 당시 강의의 핵심이었다.

그로부터 12년 5개월 뒤 그는 부산 영도구에 자리잡은 국내 유일 국립해양박물관의 제2대 관장이자 첫 민간인 관장이 됐다.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은 수산인보다 수산을 더 깊게 꿰뚫고 있었고 다수의 사람들과 달리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강조하며 한국이 해양부국, 문화부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평소 주장해왔다.

최근 주강현 관장이 세계의 어시장을 카메라로 기록한 사진집을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어시장 풍경과 물고기의 표정’이란 부제를 단 <세계의 어시장(눈빛출판사 刊)>은 해양인문학자인 주 관장이 10년간 세계 곳곳의 어시장을 답사하며 촬영한 컬러사진 140여 점을 수록한 비린내 물씬 나는 사진집이다. 민속학 연구 시절부터 현장답사와 취재에 필수적인 사진기록을 해온 저자의 30여 년 사진경력이 이번 그의 첫 번째 사진집에서 만개한 것이다. 바다와 해양문화를 모르면 찍을 수 없는 귀한 사진들이다. 주 관장은 학술과 아카이브로서 바다와 어시장 사진의 기록과 보존을 주창하고 있다. 그의 주요 세계 어시장 사진은 해양박물관 벽면에 걸려있다.

12년 전 유사무서(有史無書)의 존재로 역사의 재구성은 어려우나 생활사, 구술사, 일상사, 민속사 등을 거대한 바다의 문화와 역사를 복원해 가야한다고 강조했던 그는 해양박물관장이 된 뒤 역사는 있으나 기록이 없는 바다 사람 24인 조사 보고서를 『바다 사람들의 생애사 1』 조사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국립해양박물관장으로서 해방 이후 바다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평생을 살아온 보통 사람 24인의 구술 생애사를 엮은 것이다. 주 관장은 “이 보고서는 묵묵히 바다 일에 종사해온 이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헌정의 뜻도 포함되며, 조사를 통해 확보된 기록들은 개인의 일생뿐 아니라, 우리나라 해양 수산의 살아있는 민중 생활사로서 향후 오션 아카이브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바다 기획전
북한 바다 기획전

주 관장은 활발한 집필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해양문화를 주도하는 해양인문학자로서 53권의 단행본을 냈다. ‘바다, 문명의 서사시’, ‘세계의 박물관’ 등의 연재물도 유력 일간지에 연재하고 있다. 그는 “바다를 잃어서 식민이 되고 바다를 얻어서 제국이 된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국립해양박물관이 해양의식 제고와 해양문화진흥의 길에 선두에 서겠다”고 말했다.

최초의 민간인 출신 국립해양박물관장으로서 해양문화 발전과 해양문화유산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주 관장을 현대해양이 만났다.

주강현 관장은 서울 출신으로 경희대학교 외국어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민속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2012여수세계박람회 전략기획위원, 제주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회해양문화포럼 민간집행위원장, 『The OCEAN』, 『Ocean & Culture』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얼마 전 ‘세계의 어시장’ 사진집을 출간했는데 어떻게 내게 됐나?

세계 각국을 다니며 꼭 가는 곳이 어시장과 해양박물관입니다. 어시장에는 비린내와 질퍽거림에는 묘한 매력이 숨어 있습니다. 다양한 물고기는 그 지역의 해양 생태계를 반영하며, 다양한 층위의 상인들 역시 어시장의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사진집은 처음이지만 사진은 40년 동안 찍어왔습니다. 이 책에는 △인도양, △아라비아해, △벵골만, △동남아시아의 바다, △북서태평양, △환동해권 시베리아, △지중해, 북해, 발트해, 대서양 등 8개 권역에 펼쳐져 있는 바닷가와 내륙의 어시장 풍경을 담았습니다. 찾아다닌 장소와 시간이 다양하듯이 물고기를 앞에 두고 몰려있는 어시장 상인들과 물고기의 표정도 다채롭습니다. 전통 어로식 고기잡이(스리랑카 갈), 수상어시장(탄자니아 펨바), 시골장터의 어물전(인도 케랄라), 지금은 이전한 세계 최대의 참치 어시장(일본 쓰키지 어시장), 오랜 전통과 역사의 어시장(이탈리아 베네치아) 등 해양과 문명권에 따라 조금씩 다른 물고기와 어시장 풍경을 이 사진집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이 해양부국, 문화부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해운, 항만, 물류 등 하드웨어적인 해양관(海洋觀)에서 해양문화 진흥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로 중심을 전환해야 합니다. 바다와 면한 도시의 재생과 미래전략 수립, 해양관광과 예술, 환경과 평화 등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대한민국이 해양부국, 문화부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현실에서는 ‘해양’ 하면 단순히 해수욕장이나 하역설비, 컨테이너 같은 것들이 연상되는데, 해양강국인 스페인과 같이 바다하면 조각, 미술, 문화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해양인식으로 탈바꿈돼야 합니다. 현재 국가주도형 해양력 육성정책에서 어린이, 노인, 여성 등 다양한 계층참여와 SNS 등 뉴미디어를 활용한 민간부분 주도의 해양력 육성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해양문화포럼 창립토론회
해양문화포럼 창립토론회

 

관장 취임 후 관람객이 20%가량 증가했다는데 그 비결 혹은 차별점은 무엇인가?

박물관이 국립인지 시립인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어떤 분들은 부산에 있는 것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홍보로만은 안 되며 양질의 프로그램, 즉 전시나 교육 등 박물관이 제시할 수 있는 우수한 해양문화 콘텐츠의 성과물이 관람객 증가에 도움을 가져온 것으로 파악합니다. 언제나 그 힘은 콘텐츠입니다. 그래야 한 번 온 분들도 다시 오고 또 오게 됩니다.

 

진행중인 프로젝트와 기획 전시는?

우선 11월 1일에 국립해양조사원 70주년을 맞이하여 공동으로 고해도 전시를 오픈합니다. 12월 초순에는 세계등대전시회, 그리고 12월 중순에는 독도강치 테마전이 열립니다. 기획전과 테마전 등 다양한 크기의 전시가 준비되어있습니다. 아울러 찾아가는 박물관 등으로 오지 벽지 시골까지 바다를 실어 나를 생각입니다.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건립이 추진되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의 탄생 소식은 정말 축하드릴 만합니다. 이제 부산과 인천 양대 해양도시에 해양문화 인프라가 생겨납니다. 다만 하나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부산은 그 출발이 민자를 끌어들인 BTL방식(민간이 돈을 투자해 공공시설을 건설한 뒤 국가나 지자체에 소유권을 이전하고, 리스료 명목으로 20여 년간 공사비와 일정 이익을 분할 상환받는 민자유치 방식)이라 지금도 많은 예산을 빚 갚는데 쓰는 형편입니다. 반면에 인천은 전액 국고지원입니다. 형평성이 전혀 맞지 않습니다. 이점에 관해 부산의 국회의원이나 여론 주도층이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거듭 인천국립해양박물관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박물관 리노베이션 계획을 갖고 있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박물관이 지은 지 오래되었고, 지을 때 잘못된 부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건축물이 외형은 멋있으나 가성비가 전혀 없습니다. 예정되었던 리노베이션이 전면 시작됩니다. 한국해양오천년실, 해양문명실 등 전시관은 새로 만들고 기획전시실을 넓히며, 어린이전시관을 새로 만듭니다. 모두 돈이 들고 노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힘을 모으겠습니다.

 

국회해양문화포럼 민간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국회해양문화포럼은 의원님들의 조직입니다. 민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제가 결정할 사항은 아닙니다. 다만 의원님들과 협조하여 다양한 공청회 등을 추진해왔습니다. 현재 해양문화교육법 통과를 위해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으나 회기말이고 내년에는 선거가 있어서 당분간 적극 활성화는 힘든 처지입니다.

 

해양문화해설사 자격증을 제도화해서 해양문화 전문인력 양성할 계획 또한 갖고 있는 걸로 아는데 해양문화해설사는 어떤 역할을 하며 왜 중요한가?

그간 문화유산, 해양환경해설사 등은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해양문화에 관한 수요가 증대되고 있고 이에 따른 해양문화 해설사 신설이 필요해집니다. 수요에 따른 새로운 대응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향후 박물관 운영방향은?

저는 1년여 동안 ‘가치혁신’을 박물관 운영 모토로 해왔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가치혁신의 모토가 실천 및 이해된 측면이 있기에 책임경영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감독은 받되 일일이 사사건건 간섭하는 식은 발전에 오히려 장애가 됩니다.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당당하게 책임경영에 나서야합니다. 그러자면 직원들도 그야말로 편안한 철밥통이라는 비판을 듣지 않게 조금 더 분발하고 책임지는 행정과 학예일로 임해주셔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외 박물관 운영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은?

바다를 잃어서 식민이 되고 바다를 얻어서 제국이 된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명색이 삼면이 바다인데 해양문화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초보수준입니다. 세월호에 그 많은 생명을 죽인 것도 우리의 해양 수준을 말해줍니다. 국립해양박물관이 해양의식 제고와 해양문화 진흥의 길에 선두에 서겠습니다. 많은 찾아주시고 많은 격려와 비판과 건의의 목소리를 전달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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