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요트’ 몰려오는데 준비 안 된 한국
‘슈퍼요트’ 몰려오는데 준비 안 된 한국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11.08 09: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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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규정 개선 필요... 마리나다운 시설 구축 시급
수영만요트경기장 전경
▲계류장이 빼곡히 찬 수영만요트경기장 전경

[현대해양]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슈퍼요트들이 아시아 해역에서 자주 출몰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까다로운 법규정, 미흡한 인프라 시설로 인해 슈퍼요트들이 방문을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중해-카리브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영화나 해외드라마에서 봐온 초호화 슈퍼요트가 최근 부산 앞바다에서 몇일간 머물며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4,000억원을 호가하는 러시아 재벌 소유의 이 럭셔리한 요트는 부산 소재 마리나에 정박하지 못한 채 선석이 빈 시점을 틈타 크루즈터미널에 정박했다가 타 선박이 입항하면 다시 선석을 비워주는 등 해프닝을 겪고난 이후 다음 여정을 위해 떠났다.

통상 길이 80ft(24m) 이상 요트를 지칭하는 슈퍼요트는 전세계 1만여척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북미, 유럽 등 특급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슈퍼요트는 계속해서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로 한 척에 100여명의 선원이 승선하기도 한다.

규모 만큼이나 슈퍼요트가 한번 뜨면 씀씀이 또한 화려하다. ‘Japan Times’ 슈퍼요트 관련 기사(2019.5)에 따르면 슈퍼요트 한 척이 정박하게 되면 한달 동안 4,500만엔을 지출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정박 기간을 정하지 않는 슈퍼요트를 더 오랫동안 정박하게 하면 관광, 숙박, 기념품 구매 등을 더 유도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 해양레저관광과 홍성현 사무관은 “최근 러시아 호화요트가 정박하는 동안 1억여원을 지출했다고 알고 있다”며, “러시아 슈퍼요트가 우여곡절 끝에 한국 계류장에 정박을 할 수 있었다는데 대해 미국대사관에서 한국에도 슈퍼요트가 정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우리나라 연안에 이런 ‘큰손’ 슈퍼요트의 출몰 빈도가 잦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Andrew Chapman’ 호주마리나산업협회 회장은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제8회 국제마리나 컨퍼런스’에서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일본으로 향하는 슈퍼요트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들은 일본에만 정박하길 원하지 않는다. 한국도 돌아보고 싶어하고, 중국, 대만으로도 항해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 5월 일본 교통성은 일본 해역으로 향하는 슈퍼요트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척의 슈퍼요트가, 올해는 15~20척이 자국에 기항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Japan Times’를 통해 밝혔다. 내년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열리는 도쿄올림픽을 전후로 일본을 방문하는 슈퍼요트들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자, 일본 당국은 마리나 부두계류시설, 입항절차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통상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카리브해와 지중해 연안국가를 기항하는 것이 과거 슈퍼요트 여정의 패턴이었다면 최근 아시아-태평양으로 바뀌는 양상이 관측되고 있다. ‘The pacific superyacht report’에 따르면 지중해, 카리브해에서 국한됐던 슈퍼요트들이 태평양 연안으로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으며, 호주 슈퍼요트들은 남태평양 연안국으로 접근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Superyachtnews(2019.10)’를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전곡항 육상 보관 중인 레저보트들
▲전곡항 육상 보관 중인 레저보트들

 

옆나라 입출항절차 까다롭네

이와 같이 일본의 제도·인프라 개선이 급물살을 타고 슈퍼요트를 맞을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특급부자들이 일본과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를 지나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한 이들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권역에서 요트들이 늘어나면서 자국 영해를 넘어 한국을 목적항으로 항해하는 해외요트들도 덩달아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땅을 밟기 위해서는 일반 상선 수준의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슈퍼요트급이든 일반요트든 여부와 관계없이 현행법(선박법)상 레저목적의 선박인 요트는 국제항만시설보안규칙(ISPS)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공식적인 무역항인 개항지에 정박할 수 없다. 이에 불개항지에 정박해야 하는데 최소 5일전 계류 허가를 위해 해양수산부에 신고해야 한다. 또한, 관세법, 출입국절차법에 따라 세관, 출입국사무소, 검역소 등 관청에 들러 CIQ(출입국을 위한 3대 수속; 세관 검사(customs), 출입국 관리(immigration), 검역(quarantine)) 절차를 거쳐야 한다. 즉, 부산 한 곳만 둘러보는데만 출입국 절차가 일반 외항 상선수준으로 이뤄지고 있어 방문객들을 제주도, 여수 등 타 지역에 기항하도록 유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요트문화는 그때 그때 여건에 맞게 돌아보고 싶어하는 속성이 강하다 보니 일반상선, 여객선과 같이 짜여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특성이 있다. 요트문화가 보편화 된 나라에서 온 방문객들은 이와 같은 낯선 환경에 혀를 내두를 가능성이 높다. 요트서비스업체 ‘요트탈래’의 김건우 대표는 “유럽 해양레저 선진국가들은 요트문화가 보편화돼 있다. 국가마다 간편한 출입항 절차만 거치면 관광, 체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중해의 경우 사전 신고 없이 마리나에 도착해 관련 서류를 당국에 제출하면 즉시 입출항 업무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브랄타 해협을 지나 지중해를 빠져 나와 프랑스, 북미국가에 요트가 기항해도 거의 입출항 제한이 없다.

박창호 한국수상레저안전협회 회장은 “요트문화 과도기 시점의 우리나라도 현실적이고 적절한 법규범이 마련돼야 한다”며, “적어도 한중일에서는 간단한 CIQ 절차만 거치면 요트입출항이 자유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상호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일본에서 부산 등 우리나라 해역으로 오는 요트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항계 외부로 지정된 수영만요트경기장으로 신고 없이 진입해 밀입국 논란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해양수산부에서 보안담당자들을 수영만요트경기장에 직접 배치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항만운영과 관계자는 “수영만요트경기장의 경우 지자체에서 시설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보안, 입출입 절차에 대해서 적극적인 의지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본격적으로 요트문화가 우리나라에 안착하려는 시그널이 명확하게 나오는 가운데 혼잡한 법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관계 당국도 더이상 눈감고 방관할 수만은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 요트문화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벽을 걷어내기 위해 관계기관들의 협조가 시급해 보인다.

▲부산항 북항 마리나 조감도
▲부산항 북항 마리나 조감도

 

유명하다는 부산… 배댈 곳조차 난감

슈퍼요트 혹은 외국요트가 가까스로 정박에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요트 이용객들의 실망한 반응이 명약관화한 상황이다. 마리나라고해서 들어왔는데 전혀 마리나답지 못한 여건 때문이다. 통상 마리나는 △어선, 상선이 아닌 오직 요트, 레저보트 계류가 목적이어야 하고, △안전한 계류, 보관 기능이 확보돼야 하며, △이용 가능한 주변의 배후시설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부산에서 가장 큰 마리나 조차도 이 기본적인 요건을 제대로 충족한 곳이 없다.

수영만요트경기장, 남천마니라가 부산의 대표되는 마리나인데 국내 최대 규모인 수영만의 경우 정박 요트 길이는 12m 가량으로 70ft 이상만 되어도(슈퍼요트 80ft 이상) 계류가 불가능하다. 최근에 지어진 인천의 왕산마리나, 화성의 전곡마리나보다 인프라는 열세이다.

부산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요트경기장 관계자는 “애초 88올림픽 당시 딩기요트(1인용 세일링 요트) 경기장 용도로 만들어지다 보니 일반요트, 파워보드가 계류해도 다소 협소하다“며, “십수년 전부터 요트경기장 시설 개선과 관련돼 논의는 되고 있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

계류장이 좁을 뿐만 아니라 선석 수가 절대적으로 적어 수영만요트경기장 대기목록(Waiting List)은 항상 꽉 차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김건우 대표는 “해외 마리나에는 ‘Visitor Berthage’라는 게스트용 선석이 있어 급유와 간단한 정비를 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반드시 마련돼 있다. 이와 견줘 볼 때 수영만요트경기장은 수용태세가 전혀 갖춰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비단 부산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수상레저안전협회 관계자는 “현재 등록된 전국의 요트 숫자만 2만3,000여척에 이르는데 마리나 계류장은 2,400여석으로 1/10에 그치는 실정이다”며, “어항의 전면적 개방은 어렵겠지만 어촌계 소속 선석에 수상레저선박을 계류하는 방법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계류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보니 마리나 주변 육상에 방치되고 있는 요트들도 부지기수이다.

Filippo Burchi 이사
Filippo Burchi 이사

한편, 마리나에는 간단한 정비·수리를 할 수 있는 요트정비 시설도 필요한데 대부분의 마리나에는 전문적인 수리소나 주유소가 없으며, 수리하는데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수영만요트경기장에는 동편으로 20년 이상의 요트수리정비조합이 있어 간단한 정비·수리가 가능하지만 크레인 시설 등 인프라가 낙후돼 전문적인 정비·수리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영만요트경기장은 부산시 체육시설로 등록되다 보니 개장 30여년이 지나도 시설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요트문화 활성화 비전을 고려한 예산 책정 등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부산항 북항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구축될 새로운 마리나에 최대 24m 이상 요트가 계류할 수 있는 선석과 각종 수리, 급유시설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

한편, 마리나 배후지역에 편의점, 쇼핑, 레스토랑, 사우나 등 항해를 마치고 온 이용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전무하다. 실제로 수영만요트경기장 주위로 제대로 된 편의점이 한 곳도 없어 물을 사기 위해 근처 아파트 상가로 이동해야 한다.

박창호 한국수상레저협회 회장은 “요트는 출항해서 연안항해만 하는 레저활동이 아니다. 중간에 경유지, 목적지에 방문, 관광, 체류가 이뤄져야 진정한 해양레저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방문객들의 체류를 오랫동안 유도하는 첫 단계가 배후지역의 서비스이다. 요트문화가 정착된 선진국에서는 방문객의 이목을 끌기 위한 복합문화공간의 서비스 발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 요트문화 강국인 이탈리아의 사례가 귀감이 된다. 국제마리나 컨퍼런스에서 이탈리아 마리나인 ‘Porto Reno’의 ‘Filippo Burchi’ 이사는 “마리나 콘텐츠가 중요하다. 마리나 또한 독특한 가치를 팔아야 재방문을 유도하고 가망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자국 요트 세금 인상 정책을 겪으면서 마리나 산업이 커다란 침체기를 겪었다. 지난 2015년부터 마리나 육성을 위해 차별성 있는 콘텐츠 개발에 역량을 집중했다는 ‘Filippo Burchi’이사는 “부두, 계류시설, 육상시설, 수심 등 기본 인프라뿐만아니라 숙박, 식음, 쇼핑, 관광 등을 포함해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해역에 출몰하는 슈퍼요트를 비롯한 해외요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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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 2019-11-08 19:50:22
국내에 있는 요트들이 정박할수 있는 일반 정박장 부터 갖추는게 우선 입니다.
슈퍼 요트는 안와요 한국에, 올 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