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위험한 출항
참으로 위험한 출항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3.08.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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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잡이 D호의 모험적 항해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지난 5월 초, 출항을 며칠 앞둔 꽁치잡이배 D호는 도크에서 내려오자마자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2번 어창에 물이 차오른 것을 갑판장이 발견하고서였다. 어장에 나가 고기를 잡으면 급속냉동시킨 어획물을 차곡차곡 적재할 어창에 물을 채울 까닭은 없었으므로 그건 뱃전 어느 외판 파공부(破孔部)를 통해 스며들어온 바닷물이 분명했다.

갑판장은 그 이유를 금방 알아냈다. 방금 도크(슬립프 웨이)를 빠져나온 D호의 외양은 매우 산뜻해 보였으나, 이미 한계점인 마흔 살도 더 넘긴 노후선(老朽船)이어서 외판 곳곳은 시멘트로 덧입힌 울퉁불퉁한 혹부리 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도크에 있는 동안에도 선체를 벌겋게 물들인 녹을 벗겨내기 위해 멋모르고 망치를 두들겼더니 아주 쉽게 철판이 뭉개지는 바람에 아이구나! 하고 임시방편으로 시멘트를 처발랐던 것이다. 결국 D호는 도크로 다시 끌어올려져 문제의 철판을 새것으로 갈아 붙인 다음에야 비로소 연료유와 식료품 등의 선수품을 받아 싣기 시작했다.

상가(上架)해 있는 동안 D호는 당연히 관계 당국으로부터 규정에 따른 제반 검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선박검사관으로부터 출항해도 좋다는 합격판정을 쉽게 받아냈는데, 그럼에도 도크에서 내려오자마자 침수(浸水)라는 최악의 사태에 봉착하고 말았으니 그 하나만으로도 선박검사가 얼마나 허술하고 형식적이었는가를 너끈히 짐작할 수 있다.

L선장에게 물었다.

“그렇잖아도 지금 나갈 어장은 기상이 험악하기로 이름난 곳 아닌가?”

사실이 그랬다. 모두 열다섯 척인 한국 꽁치잡이선들은 북위 42도 너머의 북태평양을 주 어장으로 삼고, 상대적으로 악천후가 덜한 5월부터 11월말까지의 여름철을 어기로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사나흘마다 기승을 부려대는 풍파로 시앵커(Sea Anchor)에 의지한 채 바람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는 말 그대로 모험적인 조업을 계속해 왔다. 바로 그 죽음의 바다로 당장 폐선처리(廢船處理) 해도 시원찮을 낡아빠진 배로 뛰어들 판이니 그게 얼마나 억지스러운 일이냐는 물음이었는데, 선장은 묵묵부답이었다.

그 경우의 선택은 단 한 가지뿐. ‘이 배로는 항해를 감당할 수 없으니 승선을 포기하겠다’는 단호한 선장의 선언이 그것. 하지만 나이 쉰을 넘긴 L선장은 자신이 무직자(無職者)로 전락한다는 공포감으로 승선 포기 선언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는 전(前) 선주가 배를 매도하고 미국으로 도망을 치는 바람에 잠시 하선자 신세가 되면서 아르바이트로 잠시 주유소에서 일을 했는데, 그걸 본 면박을 주는 바람에 다 떨어진 배를 맡게 된 것이었다.

D호는 또 출항하자마자 조우한 악천후로 선체가 짓까부는 바람에 난생 처음 배를 탄 외국인 선원들이 멀미에 시달린 나머지 ‘돈도 싫으니 제발 나를 육지에 내려주소’라는 식으로 한바탕 사보타주(태업)를 벌인 건 오히려 약과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업을 시작하자마자 한 선원이 와이어로프에 매달린 쇠뭉치(블록)에 머리에 맞고 까무러치는 사고까지 발생해 운반선 편으로 후송시키기까지 한 달도 넘게 식물인간으로 눕는 등 그야말로 뒤숭숭하기 그지없는 선내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한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대다수 영세선주들은 신조선 건조는 엄두조차 내지 못 하고, 이를 단속해야 할 당국도 마땅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폐선 직전의 열다섯 척 봉수망선 모두 낡아빠진 선체와 기관으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의 곡예조업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새 어선 건조에 대한 일본당국의 지원

현재 한국은 총 5만여 척의 어선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연근해 주력 업종 어선을 놓고 보면 언필칭(言必稱) 수산강국이 맞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연근해고 원양이고 할 것 없이 배 나이가 평균 25년을 넘고 있어서다.

가령 연근해의 대표 업종인 대형선망과 기선저인망선의 평균선령이 20년을 넘어 있고, 그 중 외끌이는 40년을 훌쩍 넘었으며, 심하게는 60살을 넘긴 고물딱지까지 현역으로 가담하고 있다니 도대체 배를 내보내는 선주나 이를 감독하여야 할 당국의 무책임과 무관심이 도를 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목선(木船)의 한계수명은 25년 정도고, 강선(鋼船)은 35년으로 보는데, 현하(現下) 한국의 고기잡이배들은 실로 환갑을 훨씬 넘긴 처지에서 황파 넘실거리는 바다로 나가기를 업으로 삼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업계 관계자들의 자위적 변명도 모골을 송연케 한다. ‘현행법 어디에도 어선의 내구연한(耐久年限)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기괴한 전제(前提) 하에, 그래서 모든 배가 ‘땜질 식 수리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같은 상황에서 안전조업과 대어만선을 기대하기는 실로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국민 개개인의 수산물 연간 소비량은 평균 55㎏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기후변화와 남획으로 인한 어자원 감소 등으로 식량 자급률은 점점 떨어지고, 그 결과 모자라는 생선은 심지어 아프리카 등지의 수입물에까지 의존해야 하는 막다른 상황에 봉착해 있다.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연근해 주력 업종인 선망과 저인망 어선을 대상으로 ‘근해어업 선진화 방안’을 마련했었는데, 그에 따르면 신조선의 경우 선주가 건조자금의 20%를 부담하고 나머지 80%(10억 원 이상)는 단 2%의 저리로 융자해준다는 것이다. 그 실현을 위해 향후 30년간 1조2,000억 원의 특별자금으로 전체 고물딱지 배를 신조선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사업이 마감되는 2040년이 오면 가장 먼저 건조된 배는 다시 노후선 처지가 되어 있을 판국이니 그 실효성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 이웃 일본은 2008년도부터 ‘어업지원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구조조정과 함께 신조를 희망하는 선주에 대해 3년 동안 건조비용 일부를 포함한 연료비 및 자재비 등을 계속 지원해오고 있는 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 정책은 영세선주들로 하여금 신조선 건조에 적극 참여토록 하는 한편, 사업 초기부터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인데, 그에 대한 반응이 매우 뜨겁다고 한다. 게다가 금융기관에서도 15년 상환에 연 2%의 아주 낮은 금리로 신조비용을 융통해주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중견 수산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바람직한 정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일본 서부지방에서는 선망선 모선(母船)을 건조할 경우 종전의 135t에서 199t으로 키우도록 하고 있다. 이는 어업능률 제고와 함께 거주공간을 여유롭고 안락하게 개선시킴으로써 어렵고 힘들다는 그물작업에 대한 어부들의 인식을 바꾸면서 일자리 창출까지 하는 말 그대로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얻고 있는 셈이다. 또 이웃 대만과 영국에서도 장기 및 저리융자 등으로 구조조정과 함께 어선 현대화사업에 지속적 정책을 펴고 있음도 눈여겨 볼 일이다.

어차피 개척과 도전의 프런티어이자 식량조달의 보고인 바다를 외면할 수야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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