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강국서 꽃피지 못한 원양어선
조선강국서 꽃피지 못한 원양어선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09.10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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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 특화 조선소 경쟁력 있어

[현대해양] 심각한 노후화가 진행된 국내 원양어선에 대한 신조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중소조선소에 맡기자는데는 미덥지근한 반응이다. 업력을 갖춘 대내외적으로 경쟁력 있는 어선 조선소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신라교역 원양어선

실종된 원양어선 건조

우리나라 원양어선은 물갈이가 필요한 상황이다. 원양산업통계연보에서 2017년 기준 국적 원양어선은 총 221척, 이 중 26년 이상의 노령화 어선이 190척, 전체의 8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원양트롤, 원양채낚기, 원양통발어선은 100%이다.

이는 근해어선 노령화 비율 19%, 연안어선 5.6%라는 조사결과와 비교해도 원양선대의 교체가 시급해 보인다. 선박 노령화로 인해 연료비 부담 증가, 생산 효율성 저하, 장비 고장 등 안전사고 위험 등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는 팔을 걷어부친 상황이다. 올해 초 친환경, 복지형 표준선형이 개발됐으며 해양수산부는 중견선사 원양선대의 신조 유도를 위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특히,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원양선사에 한해 원양안전펀드 1,700억원을 조성, 40년이 초과한 초고령 선박 17척을 우선적으로 2023년까지 신조선으로 교체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지난 7월 2일 28년 만에 국내에서 오징어 원양채낚시어선 신조 계약이 강남조선소에서 체결되면서 물갈이를 위한 출발선을 끊은 상황이다.

원양안전펀드는 여객선 현대화펀드 시스템에서 빌려와 시도됐다. 현대화펀드는 신조를 위해 금융기관 대출(선박담보) 및 선사부담을 결합하여 선박대여회사(SPC)를 설립하고 이곳에서 신조 비용의 50%를 부담, 나머지 50% 중 선사가 10~20%만 부담하고 20~30%만 대출해 선박건조가 진행되는 선박금융 지원장치이다.

금융기관은 담보 가치가 열악한 어선으로 인해 변제가 불가능할 여지를 우려해 대출에 소극적이었던 차에 이와 같은 정책자금지원이 달갑게 다가왔지만 여전히 비용이 부담되는 중소원양선사에게는 신조가 현실적으로 버거운 상황이다.

한국원양산업협회 관계자는 “현재 신조 비용은 톤당 1,000만원 선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통상 신조선은 700톤 이상 건조가 이뤄지므로 척당 70~80억원에 육박한다. 최근 성사된 오징어채낚기어선은 척당 120억원에 성사됐는데 신조를 단행하면 수십년 대출금을 갚아나가야 한다”며, “최근 1척으로 연간 1~2억원수익(순이익)을 낼 정도로 대형선망어선(근해어선) 1척보다 못한 수익을 내는 업체도 많은데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한국원양산업협회에 따르면 2019년 8월 기준 원양업체는 총 51개사, 8개사가 중견기업, 43개사는 중소기업으로 분류된다. 경영 형편이 다소 나은 중견기업의 경우에도 신조선으로 전환 기준, 노후선에 대한 규제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신조 부담을 안기는 버겁기 마찬가지다. 중견원양 A선사 관계자는“자사 선대에도 40년 가량된 노후화된 배들이 운영되고 있지만 수산업이 예전 같지 않아 적극적으로 신조계획을 기획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각국이 수산물 확보를 위해 전세계에 원양어선을 포진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 수산자원관리 기조가 공고화되고 국제기구 및 각국의 어획량 제한 및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원양어선 선대확충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연도별 우리나라 원양어업 허가어선 수는 2008년과 2017년을 비교할 때 태평양이 198척에서 136척으로, 인도양 34척에서 15척, 대서양은 122척에서 70척으로 감축됐다. 원양 어획량에서도 지난 1990년 92만톤에서 2017년 47만톤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여기에다 원양어선은 쿼터(조업할당제, Quater)가 존재하여 자발적으로 선대를 늘리지 못한다. 한번 쿼터를 받으면 2년 동안 유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데, 타사의 1척이 쿼터에서 퇴출돼야 우리나라가 그 쿼터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치킨게임과 같아서 쿼터도 없는데 원양어선 건조를 섣불리 단행할 수 없는 것이다.

 

보릿고개 중소조선소… 업계는 해외 선호

혹여나 발주 여건이 조성돼 선사에서 신조를 구상하게 된다면 대만 조선소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중견원양B선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비용이 높다. 대만에서 지으면 2/3가격으로 지을 수 있다”며, “역량에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 이미 오래 전부터 건조업력을 갖춘 대만이 기술력, 서비스 등에서 더 낫다”고 밝혔다. 대만의 경우 어선건조에 특화된 금융제도뿐만 아니라 중소조선소, 수리소 등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발주처들은 저렴하고 공신력 있는 대만으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한때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수산업에 불을 지피기 위해 어선건조가 활발히 진행됐지만 업계부진과 함께 현재는 이름을 내세울 조선소, 수리소, 선박금융제도가 자취를 감춘 모양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시 소형어선의 건조지원과 연근해 및 원양어선의 도입이 진행됐으며, 어선법이지난 1977년 제정되면서 한국어선협회(현,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이 설립, 어선건조 조정과 어선등록 및 검사, 연구개발에 관해 전담기구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제4차 5개년계획(1977~1981) 중에는 국민투자기금에 의한 계획조선사업을 추진하여 대형 어선건조를 지원했지만 1990년대 이후 기류가 바뀌면서 국민투자기금에 의한 계획조선사업이 폐지되고 어선 신조에 대한 정책지원은 억제, 부분적으로 어선의 기관 개량 사업이 한시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어선이 물꼬를 튼 계획조선사업으로 상선 위주의 연구개발이 상당히 진행돼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의 조선기술력을 갖추게 됐다.

지금은 어선을 연구하는 전문연구기관도 없는 실정이다. 조진만 부산대 조선해양플랜트글로벌핵심센터 연구교수는 “국내에 중소형선박 연구를 전담하는 중소조선연구원이 있지만 해양레저선박 위주로 연구가 진행된다. 어선을 연구하는 기관은 전무하다”고 진단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어선 관련 연구개발 자료는가뭄에 콩 나오듯 하는 실정인데다 원양어선 건조와 관련된 축적된 어선 설계도도 없는 실정이다.

업력이 없다보니 선사가 세계 최강의 국내조선소에 어선을 발주하기에는 미온적인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호황기에 중소조선 할 것 없이 대부분 조선소에서는 대형상선 위주 수주가 혈안이었지 어선에는 관심이 싸늘했다”고 밝혔다.

어선건조 비용의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기자재 분야도 미약하긴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비교적 쉬운 통신기 정도는 국산제품을 쓸 수 있지만 레이더, 특히 어군탐지기는 발주처에서 고개를 절레절레한다”며, “업계 관행적인 평가에서 일본 어군탐지기의 성능에 대한 공신력이 크다. 국산 장비가 물고기를 잘 탐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선주들이 없다”고 밝혔다. 엔진 또한 국산화가 이뤄졌지만 그간 실전에는 관공선 몇 척에 접목됐을 뿐 빛이 바래진 상태이다. 신조가 단행돼도 엔진, 냉동기, 발전기, 항통장비 등 기자재를 전량을 수입해야 하는 실정이다보니 조선소 입장에서도 수익성이 낮다.

 

어선건조 시장에 주목해야

최근 봇물터진 LNG선 발주에 기지개 켜는 대형조선사에 비해 여전히 수주가뭄으로 곡소리를 내고 있는 중소조선소를 목도하는 지금 그간 상선에만 의존했던 정책을 과감히 탈피하고 어선건조에도 관심이 모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진만 연구교수는 “우리나라는 조선강국이지만 물량 대부분이 해외선사로부터 확보돼 왔다. 이에 해운 불황시 글로벌 선사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어 체력이 튼튼치 못했다”며, “내수를 키워 이런 악순환에서 탈피하자는 측면에서 어선에 초점을 돌려야 한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조선강국 명맥을 이어가는 우리나라에 각국으로부터 어선건조에 대한 문의가 오고 있다. 양동엽 해양수산부 국제원양정책관은 “전세계에서 어선을 건조할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힌다. 수요가 많은 후진국에서는 제대로 된 어선건조가 불가능하다”며, “해외로부터 어선건조와 관련해 문의가 많다. 지속적으로 어선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우리나라에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성동조선이 건조한 80m급 참치선망어선 '사조 콜럼비아호'가 영국 왕립학회지인 네이벌 아키텍트(Naval Architect)로부터 최우수 선박으로 선정된 바 있다. 대선조선은 지난 2016년 동원산업에 참치선망어선 2척을 인도, 지난달 1일에도 동종선 2척을 인도하며 수주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될성 부른 조선소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도 손꼽을 만한 어선건조 조선소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폐업된 통영지역 조선소
▲ 폐업된 국내 조선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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