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사마천(司馬遷)과 화식열전(貨殖列傳)
경제학자 사마천(司馬遷)과 화식열전(貨殖列傳)
  •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3.07.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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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사마천(司馬遷)은 역사가입니다. ‘사기(史記)’는 역사서이면서 문학작품입니다. 그래서 사마천은 대문호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사마천은 여행가였습니다. 또 위대한 경제학자였습니다.

사마천은 관리가 되기 전인 스무 살 때 장강(長江)에서 산동(山東), 황하(黃河) 유역을 여행합니다. 역사책을 쓰고자 했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후일 관리로서 혹은 한무제를 수행하면서 도합 6차에 걸쳐 대장정을 합니다. 대강의 경로는 동북쪽으로 지금의 내몽골 자치구와 동북 3성, 서남쪽으로는 신강 위구르 자치구와 감숙성 및 서장의 티베트 자치구까지 중국 전역에 이릅니다. 이것은 당시의 교통상황을 고려한다면 엄청난 여정입니다. 여행을 통해 사마천은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민간에 흩어진 자료와 이야기들을 수집했으며 민중의 구체적 살림살이를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사기’가 현장감 넘치는 살아있는 역사기록이 된 연유입니다.

‘사기’는 12본기, 10표, 8서, 30세가, 70열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열전(列傳) 70권 중 제69권이 화식열전(貨殖列傳)인데, 화식은 돈을 번다는 뜻으로 경제와 부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화식열전에서 사마천은 물질적 이익 추구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물질적 재부가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며 경제권을 쥔 사람이 사회여론을 조종한다고 지적합니다. 그것도 전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보고 생각한 바를 기초로 생생하게 기록했습니다. 특히 중농정책도 중요하지만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상업의 발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주장으로 후일 유학자들로부터 신랄한 비난을 받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역사가였던 사마천이 왜 뜬금없이 부자와 상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해 기록했을까요. 개인적인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화식열전은 바로 사마천 자신이 돈이 없어 처참한 궁형을 받아야 했던 과거와 그 과정에서의 쓰라린 경험을 일반화하여 승화시킨 기록이기도 합니다.

사마천은 흉노와 전쟁 중 어쩔 수 없이 항복한 이릉(李陵)장군을 변호합니다. 조정에서 이릉을 처벌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을 때 사마천은 기록을 담당하는 태사령(太史令)으로 배석해 있다가 무제(武帝)의 질문을 받습니다. 사마천은 대답합니다. 이릉은 패전한 것이 아니라 혼자서 5,000의 병사로 8만의 적과 잘 싸운 것이며, 전세가 불리해 항복한 것은 후일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었을 거라고 적극 변호합니다. 무제는 ‘혼자서 잘 싸웠다’는 말이 같이 출전한 상장군 이광리(李廣利)를 모함한 말이라고 크게 화를 냅니다. 이광리는 무제의 처남이었습니다. 결국 사마천은 하옥되고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사형을 면하는 방법은 두 가지, 돈을 내거나 궁형(宮刑)을 받는 것. 당시 한나라는 속전제(贖錢制), 돈으로 죄를 면할 수 있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속전은 50만 전, 사마천은 속전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50만 전은 당시 큰 부자가 2년 반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돈이었습니다. 말직인 사마천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돈, 결국 사마천은 돈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집에 있던 솥단지까지 팔고 친정 부모에게까지 사정하고 빌렸는데도 겨우 15만 전을 모았을 뿐입니다. 동료들조차 문도 열어주지 않았고 오랜 친구들도 고작 몇 천 전 정도 빌려주었을 뿐입니다.

사마천은 죽기 전에 꼭 할 일이 있었습니다. ‘사기’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궁형을 자청하고 살아남았습니다. 궁형(宮刑)은 남성을 거세하는 형벌입니다. 이런 처절한 경험이 있기에 사마천은 돈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고 돈과 관련된 세상의 인심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작금의 시장의 현장경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릴 기세입니다. 경기부진에 따라 취했던 양적완화를 축소할 예정입니다. 경기가 조금 살아나면서 인플레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국내에 들어왔던 외화자금이 탈출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중국의 경기하락이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우리의 중국수출은 전체 수출의 30%가 넘습니다. 중국경제의 하강은 우리의 수출부진으로 이어집니다.

사람 사는 살림살이를 경제라 하던가요? 경제는 통계가 아닙니다. 시장 좌판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색종이 오려붙이듯 책상머리에서 조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계적 숫자놀음이 아니라 현장에서 눈빛 부딪치며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어려움은 언제나 서민의 몫입니다. 무릇 정책을 책임진 사람들은 현장의 구석구석을 잘 돌아보고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돈 때문에 치명적으로 억울한 일이 없도록 조치해야 할 것입니다. 사마천처럼 역사가는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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