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3.06.11 1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海洋文學 순례 ⑭

                                   1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시인 호메로스(Homeros ; 출생연대 미상)가 신화(神話)를 근거로 엮은 <오디세이아(Odysseia)>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敍事詩)다. 기원전 9∼8세기에 엮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시는 <일리아드>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국민적 양식으로 기능했으며, 그 스토리 전개나 구성 등 문학적 얼개가 오늘날 일반문학과 별반 다를 게 없어 이를테면 세계문학의 모태(母胎)로 인식되고 있다.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의 오디세이아는 그 낭만적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7년 동안 오기기아라는 섬에 억류된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돼,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겪은 항해와 난파, 그리고 표류하는 동안의 온갖 모험담에 수시로 여러 신(神)들이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역사의 한 단면이다.

오늘날 에게해(海)인 이타케라는 섬의 왕족에게서 태어난 오디세이아는 나중 왕위를 물려받지만, 제우스 신의 딸 헬레네를 왕비로 맞아들이지 못하고 대신 이카리오스의 딸 페넬로페를 아내로 맞아들여 아들 텔레마코스를 얻는다.

헬레네는 그만큼 절세미인이었으나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여자가 그의 운명에 영향을 끼칠 근거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로 인해서 트로이전쟁이 발발하고, 10년 동안 계속된 전쟁에 응원군으로 참전한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목마(木馬)를 투입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그 과정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눈을 멀게 한 죄로 노여움을 산 나머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에게 사랑의 노예가 된 채 억류돼 있었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트로이전쟁의 내막에 대해 얼마간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지만 지면 관계로 건너뛰는 대신, 인터넷 검색이나 백과사전 등으로 관련 내용을 사전 습득하시기 바란다.

그렇게 사랑의 볼모가 된 오디세우스는 님프 칼립소와 뜨거운 밤을 함께 보내지만, 고향에 두고 온 아내를 잊지 못한 채 해안 바위나 백사장으로 나가 황량한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과 탄식으로 무정한 세월을 탓하고 있었다.

그런 한편 고향의 아내(페넬로페)는 생사도 불분명한 남편이 꼭 살아 돌아오리라 믿고 기다리지만 워낙 세월이 오래다보니 상심할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그녀를 탐낸 인근의 영주 등 권력자 수십 명이 몰려와 ‘당신 남편은 죽었으니 나와 같은 침대를 쓰자‘는 식으로 집안 곳곳을 점거한 채 집안을 어지럽히는 해괴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이야기는 바로 그 대목에서 시작된다.

오디세우스의 귀국 문제는 아연 그리스 신들 사이에서도 최대의 화두였는데, 먼저 문제를 제기한 이는 제우스의 딸 아테네 여신이었다.

“오디세우스의 처지는 참으로 가엽기 짝이 없군요. 칼립소에게 붙들려 귀국하지도 못하고 자그만 섬에서 고난을 겪고 있으니 말예요.”

이에 하늘을 지배하는 제우스 신도 동의했다.

“내가 어찌 충성스러운 오디세우스를 잊을소냐. 모든 일은 포세이돈의 노여움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계책을 세워주어야 할 것이다.”

동의를 받아낸 아테네 여신은 곧 황금으로 만든 샌들을 단단히 비끄러매고, 청동제 창을 들고서 오디세우스의 친구(타포스 군주 멘테스)로 변장한 다음 올림푸스 높은 봉우리를 건너뛰어 불행한 주인공의 고향(이타케 섬)에 당도하여 그곳 사정을 살피게 된다. 그곳 궁전에서는 많은 영주들이 연일 잔치를 벌이며 재산을 축내고 있어 여신은 하루라도 빨리 오디세우스가 돌아와 이들을 퇴치시켜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아테네 여신은 아들 텔레마코스로 하여금 아버지를 구출하라고 이르고, 튼튼한 배에 능숙한 선원들을 붙여주는 것과 함께 식량 등 온갖 생필품을 마련한 다음 자신도 항해에 동참했다. 마침 오디세우스의 귀국을 한사코 방해하던 포세이돈이 인간세계의 끝자락인 아이옵스 족 제사에 참여하고 있어서 시기도 적절했다. 

 - …… 돛대를 고정시킨 다음 선원들이 돛폭을 조절하는 쇠가죽 끈을 잡아당기자 아테네가 불어주는 순풍 덕으로 돛이 활짝 펼쳐지면서 배는 포구를 뒤로했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포도주 빛 바닷물 위로 하늬바람이 서서히 불어왔다. 배가 나아감에 따라 파도가 일어 용골 양편으로 바닷물 소리가 들려오자 여신과 아들은 포도주를 가득 채운 잔으로 영원히 굽어 살피시는 신들에게 바쳤다. 그렇게 하여 배는 새벽녘까지 물결을 헤치며 망망한 대해를 달렸다.……

서사시 도입부의 항해와 관련된 묘사인데, 놀라운 것은 지금으로부터 실로 30세기도 더 전인 고대 그리스 시대에 선박과 관련한 기본 명칭이나 범선항해에 대한 서술이 비교적 완벽하고 흠결이 눈에 띄지 않아 현대작가들도 흉내내기 어려울 만큼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시인의 작가적 자질을 가늠할 수 있고, 따라서 그의 <오디세이아>는 오늘날까지 해양문학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한편 제우스 신도 아들 헤르메스를 사절(使節)로 임명하면서(제우스는 정식 아내 말고도 여신이나 심지어 인간 여성들 사이에 수십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는데, 헤르메스도 그 중 하나다), ‘지금 오기기아 섬에서 님프 칼립소에게 붙들려 있는 오디세우스를 구출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명령했다.

명을 받은 헤르메스 역시 황금으로 만든 샌들을 비끄러매고 기능이 다양한 지팡이를 무기 삼아 섬으로 가서는 칼립소에게 제우스 신의 지시를 전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포세이돈과 명계를 차지한 하데스 신과 더불어 하늘을 지배하는 제우스 신의 분부를 그녀가 거역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여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돛배를 만들어 고향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디세우스의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일 뿐이었다. 제사에 참여하고 막 돌아온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알아채고 분노한 게 그것이었다.

“이건 필시 신들이 오디세우스에 대해 연민의 정을 품은 게 틀림없다. 하지만 안 되지. 아직도 나는 얼마든지 더 큰 재앙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단정한 포세이돈은 곧 떼구름을 만든 다음 삼지창으로 잔잔한 바다를 마구 휘저어대니 한순간 천지가 캄캄해지면서 서풍과 북풍이 동반된 큰 파도가 세상을 뒤엎고, 그 파도가 끝없이 산과 골을 만들어내어 오디세우스는 더 이상 뗏목에서 버텨낼 수 없었다. 진저리치는 파도로 돛이며 뗏목이 모조리 떨어져나가는 바람에 바다 밑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여러 번이었다. 추위를 이겨내라고 칼립소가 입혀 준 옷가지가 무게를 더한 탓이었다. 한사코 조각난 널빤지를 붙들고 버텼지만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내팽개치기만 했다. 그는 결국 옷가지를 모두 벗어던질 수밖에 없었다.

표류는 끝이 없었고, 그는 사흘이나 사경을 헤매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디까지나 그의 편이었다. 마침 그 광경을 지켜본 다른 님프가 갈매기로 변신하여 머리에 두른 스카프를 건네주면서 섬이 있는 방향으로 안내해 주었으나 고난은 그치지 않았다.

그를 위기에서 구해준 이는 앞서의 아테네 여신이었다. 삼각파를 일으키는 서풍을 잠재우고 북풍만을 불게 해 파도를 잠재웠던 것이다. 덕분에 오디세우스는 겨우 육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 …… 소리쳐 부르면 들릴 만한 해안 가까이로 헤엄쳐 왔을 때 그는 암초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 파도에 휩쓸린다면 결과는 치명적일 게 틀림없었다. 때문에 담대한 오디세우스도 무릎이 떨리고 용기마저 사라져 이제 죽는구나 하는 막다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원문에 나오는 묘사인데,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신의 도움을 받아 냇물이 흐르는 관목 숲 모래밭에 도달했으나 워낙 기력이 쇠잔하여 겨우 낙엽으로 알몸을 덮는 것으로 언제 깨어날지 모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또 다른 여왕(나우시카)이 통치하는 고향과 이웃한 스케리라는 섬에서였다.


                                 3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주변의 소란으로 그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화창한 날이어서 그 섬의 공주와 시녀들이 부근 냇가에서 빨래를 하며 조잘댄 때문이었다. 그 소리에도 풍파에 혼이 난 터라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또 어느 못된 야만인인가, 아니면 초원으로 가축을 몰고 나온 님프들인가. 궁금증을 떨칠 수 없어 나뭇가지로 알몸을 가리고 소리 나는 쪽으로 가만가만 다가갔다.

오랜 표류로 형편없이 몸이 축이 난 한 남자가 거의 알몸으로 나타나자 빨래터 여인들은 혼비백산 도망쳤으나 공주는 그러지 않았다. 여신이 그녀에게 두려움을 없도록 해준 덕분이었다.

그 여인이 공주임을 안 표류자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고을로 가는 길을 알려줄 것과 몸을 가릴 누더기라도 달라고 애원해 도움을 받았다.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른 다음 옷가지를 걸치자 그는 대번 의젓하고 준수한 사나이로 변모했다.

공주의 안내로 마을로 들어간 오디세우스는 그 섬 주민들이 두루두루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았다. 남자들은 능숙하게 배를 저었고, 여자들은 사과 빛 곡식을 멧돌로 가루를 내거나 혹은 베틀을 돌리거나 했다. 들판도 기름져 곳곳에 오곡백과가 두루두루 익어가고 있었다. 나날의 삶도 여유롭고 윤택하여 하프 등 악기가 연주되는 가운데 풍족한 음식으로 손님을 대접해 주었고, 연회를 마친 다음에는 활쏘기와 원반던지기 등 온갖 기예로 며칠을 보냈다. 표류자도 제일 큰 원반을 가장 멀리 던져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귀국 길이 열렸다. 왕은 갖가지 황금이며 토산물을 넣은 나무궤짝을 선물로 마련했고, 안전귀향을 위한 제물로 암소 한 마리를 신에게 바치는 기원제까지 베풀어 준 다음 선원들이 노를 젓는 일종의 갤리선에는 항해 도중 안온하게 잠잘 수 있도록 두터운 모포까지 깔아 주었다.

오디세우스가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배는 박차를 가한 말처럼 아주 빨리 고향 섬으로 달렸다. 항해가 순조로웠던 건 선원들이 그 뱃길을 여러 번 다녀본 덕분이었다.

다음 날 새벽별이 솟아날 즈음, 배는 고향 섬에 이르렀으나 주인공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선원들은 그를 깨우지 않고 해안 모래사장으로 옮겨 뉘인 다음, 누가 훔쳐가지 않도록 보물 상자까지 숲속 바위 사이에 숨겨 놓고는 되돌아갔다.

하지만 잔치에서 돌아와 뒤늦게 그 사실을 안 해신 포세이돈은 노발대발했다. 더욱 인간인 스케리 섬 주민들이 자신의 의도를 거역하고 오디세우스를 귀국토록 한 것은 자신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라 여기고 당초 귀국을 주선한 라이벌 제우스에게 말했다.

“제우스 대신이여! 온갖 고난을 겪은 뒤 오디세우스는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방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향에 닿기 전 더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게다가 그는 스스로 축적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보물까지 갖고 있습니다.……”

제우스 신이 다독거렸다.

“바다를 뒤흔드는 신이여, 다른 신들은 그대를 결코 업신여기지 않을 걸세. 그런데 인간들이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면, 그들을 보복하더라도 나는 말리지 않겠네.”

포세이돈은 보복하는 방법으로 오디세우스를 태워준 배를 가라앉혀 버리겠다고 말하고, 먼저 스케리 섬으로 가 오디세우스를 태워준 배를 돌로 만들어버렸다.

한편, 오디세우스가 잠에서 깨어나니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안개만 자욱하여 아무 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더욱 오래 떠나 있었던 탓으로 그는 자기 나라로 돌아온 것마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뭔가 잘못되어 전혀 낯선 땅에 내팽개쳐진 것으로 오해하고 한탄에 빠졌다.

그 때 망토를 걸치고 창을 든 한 사내가 나타났다. 오디세우스는 놀라 한 발 뒤로 물러났으나 그는 남자로 변신한 아테네 여신이었다. 여신은 오디세우스에게 지금 발을 딛고 선 이곳이 바로 고향 땅임을 알려 주었다.

여기에서 여신은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의 갖가지 상황을 전해준다. 궁전에서는 아내 혼자 비탄에 젖은 채 지금껏 오직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소식이 두절된 아버지를 찾아 아들은 고향을 떠났다는 것, 그 같은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염치없고 비도덕적인 이웃 고을 영주들이 정절 곧은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궁전으로 쳐들어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 등을 낱낱이 전해주었다. 그리고 덧붙인 것은 그들 염치없고 뻔뻔스러운 패거리들을 하나 남김없이 보복해 주어야 한다면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려면 누구도 당신을 알아보면 안 됩니다.”

그게 여신의 계략이었다. 여신은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지팡이로 오디세우스에게 요술을 부려 살결은 거칠게, 머리카락은 백발로, 그리고 두 눈마저 백태 낀 모습으로 바꾸어버리니 그야말로 거지꼴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다음 여신은 우선 돼지를 사육하고 있는 마을로 가라며 길을 알려주고는 이번에는 아직도 아버지를 찾아 각지를 떠돌아다니고 있을 아들 텔레마코스를 찾아 떠났다. 아들을 합세토록 하여 궁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패거리들을 처치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네 마리 개를 데리고 수백 마리 돼지를 키우고 있는 사람은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떠나기 전의 옛 하인 에우마이오스였다.


                                  4


▲ 시인 호메로스. 호메로스가 신화를 근거로 엮은 <오디세이아>는 스토리 전개나 구성 등 문학적 얼개가 오늘날 일반문학과 별반 다를게 없어 세계문학의 모태로 인식되고 있다.
여신이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아들은 스파르타 왕의 접대를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시도 부친을 잊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에게 여신이 말했다.

“텔레마코스여, 집안에다 무례한 사나이들을 내버려둔 채 이처럼 타국 땅을 떠돌아다녀도 되는 일인가?”

그런 다음 당장 고향 섬으로 돌아가되, 우선 돼지지기 오두막으로 가라고 이른다.

며칠 후 텔레마코스는 부친이 기거하고 있는 돼지마을에 도착한다. 늙은 하인은 그를 알아보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를 바로잡아준 것도 여신이었다. 지팡이로 어루만지니 아버지가 예전의 풍아한 모습을 되찾은 것이었다.

신화는 여기서 끝이 나야 한다. 유랑하던 아버지가 고국으로 돌아와 아들까지 만났으니 이제는 곧장 궁전으로 달려가 집안을 어지럽히고 있는 패거리들을 몽땅 응징하고 다시 예전과 같이 단란한 가정으로 되돌리면 그것으로 모험담은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여신이 짓궂었던지, 아니면 원래의 신화가 그랬던지, 아직도 반이나 남은 페이지는 지루하기만 한 군더더기로 이어진다(그게 예로부터의 소설적 기법이런가).

드디어 돼지지기와 함께 부자가 집으로 돌아갈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아들은 샌들을 신고 창을 움켜쥔 의젓한 용사 차림이었으나 아버지는 다시 거지 행색으로 돌아갔다. 만약 주민들이 오디세우스를 알아볼 수 있도록 의젓한 차림을 하게 했더라면 사태는 매우 빠르게 마무리될 수 있었을 것이나 짓궂은 여신은 그러지 않았다.

그 결과는 뻔했다. 먼저 들어서는 아들을 본 유모와 시녀들은 곧 알아보고 반가이 맞아주었으나, 거지 행색의 아버지는 심지어 아내인 페넬로페조차 알아보지 못한 게 그것이었다. 아내는 심지어 남편을 어느 먼 타국 땅으로부터 흘러들러온 방랑자로 알았을 정도였다.

당시 마당에는 구혼자들이(이 대목에서 시인은 이들 무법자들을 구혼자로 바꿔 부르고 있다) 창 던지기 놀이를 한 다음 살찐 염소와 암소 등을 잡아 푸짐한 만찬을 즐기면서 주인이 돌아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여신의 장난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주인으로 하여금 만찬장을 돌며 구걸 행각을 하도록 부추긴 게 그것. 그 상황에서 구혼자들은 거지의 허리를 걷어차거나 어깨를 후려치는 등 온갖 멸시를 안겨주었다.

드디어 구혼자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아내 페넬로페와 돌아온 방랑자가 마주 앉았다.

먼저 아내가 묻는다.

“손님, 당신은 누구시며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럼에도 주인은 자신이 누구라고 밝히지 않은 채 다만 오늘 연회장에 참석한 사람 중에 남편이 섞여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아내가 꼬치꼬치 캐물었으나 끝까지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이 장구한 스토리의 절정이 눈앞에 전개된다. 여전히 구혼자들이 생과부를 들볶는 가운데, 어느 누군가가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기발한 제안을 꺼낸 것이다.

“당신 모친은 지금도 남편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네.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으니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네. 그러니 마음을 돌려 누구든 선물을 가장 많이 지참한 인물을 골라 결혼시키도록 허락하는 게…….”

짓궂은 여신이 새로운 제안을 냈다. 구혼자들끼리 활쏘기 경기를 벌이되, 강철로 만든 도끼를 시위가 센 활로 쏘아 맞히는 자가 자격을 얻도록 하자는 제안이 그것이었다.

구혼자들은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평생의 소원을 이룰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많은 구혼자들이 시도했으나 시위를 당기지도 못 했다.

바로 그 순간 주인공이 나선다.

“당신들 틈에서 나도 팔뚝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그 말에 구혼자들은 코웃음을 치거나 화를 냈다.

드디어 오디세우스가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물론 청동으로 장식된 화살은 정확하게 도끼자루 구멍을 뚫었다.

그 순간 오디세우스는 누더기를 벗어던지고 예전의 우람한 모습을 되살리고는 모두에게 “이제 바야흐로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고 소리치며 연회석 상좌에서 막 황금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 사내를 겨냥하고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사내 목줄기에 정확히 꽂혔고, 술잔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선혈이 대롱처럼 솟아올랐다.

화살을 맞은 그 사내야말로 구혼자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고 뻔뻔했는데, 자신이야말로 신에게서 택함을 받고 있으므로 여왕은 당연히 자신이 차지해야 한다고 떠벌린 장본이었다. 더 나아가 아들과 충직한 옛 하인에게 ‘그렇잖아도 부랑자가 지천인데, 무엇 때문에 이 지저분한 거렁뱅이를 데리고 와 잔치를 망치느냐?”고 힐난하면서, 왕에게도 “젊은이들에게 팔 다리가 잡혀 온 저택을 가축처럼 끌려 다니기 전에 썩 꺼지라!”고 핍박한 타 고을의 영주 안티노오소였던 것이다.

그 처치가 보복의 시작이었다. 연회장은 곧 아수라장으로 돌변하였고, 개중에는 아직도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부랑자 주제에 무사에게 활시위를 당기다니 말이 되느냐? 네놈이 이다케 섬의 가장 뛰어난 인물을 죽였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해 독수리 먹이가 되어야 한다’며 무기를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오디세우스가 나섰다.

“이놈들아! 내가 영원히 못 돌아올 줄 알았더냐? 시녀들을 멋대로 농락하고, 왕궁을 엉망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남의 아내에게 추파를 던지다니! 네놈들은 이제 모조리 파멸의 오랏줄에 걸려들었다!”

그 말에 새파랗게 질린 무법자들이 죽을죄를 지은 만큼 그 동안 축을 낸 재산을 보상하는 방법으로 각기 암소 스무 마리씩 내놓겠으니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오디세우스가 아니었다.

“네놈들이 전 재산을 다 갖고 오더라도 나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자, 맞서라! 설령 도망을 치더라도 파멸의 불씨를 피할 수는 없다!”

모두 고개를 꺾은 가운데 한 사내가 청동칼을 뽑으려 했으나 그 역시 재빠르게 날아온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탁자 위로 상체를 거꾸로 처박았다.

이후의 복수극은 용맹한 아들과 충직한 옛 하인의 가세로 가볍게 끝났다. 그런 다음 오디세우스는 끝까지 정절을 지키며 남편이 돌아오기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려 준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재회하면서 해피엔딩의 막이 내린다.


                                                     5


이것으로 독자 여러분들은 세계문학의 고전이자 교과서인 <오디세이아>를 모두 통독함으로써 성스러운 문학 애호가에의 입문(入門)을 거쳤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독후감(내지는 작품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을 추가한다면 여러분들 역시 당당한 한 사람의 평자(評者)로 우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책은 총 24권에 1만2,100행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서사시지만, 전반적 서술 형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온 신화를 마구 늘어지기 일쑤인 대화체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를 현대식 소설체로 압축한다면 그 페이지는 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또 무슨 이야기건, 고대 그리스 역사는 시종 신들의 유희(遊戱)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 다시 말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기에 특히 여신 아테네가 끼어들어 뭇 인간을 마음껏 희롱하고 있음에랴!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인은 이 이야기를 쓰면서 시종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위대한 모험가로 만들고 있는데 그게 과연 정답이냐는 것이다(그래서 ‘영웅 서사시’라고도 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분명 트로이전쟁의 영웅이었지만, 이후 님프에게 사랑의 볼모로 허송한 7년 세월의 모든 것을 보상받음으로써 잃은 것이 하나도 없는 행운아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영웅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비극’에서는 그를 가리켜 냉혹하고 교활하면서 과단성이 다소 결여된 사나이라는 또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독자들의 생각도 달라질 게 틀림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