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파산백서...경쟁국만 ‘반면교사’
한진해운 파산백서...경쟁국만 ‘반면교사’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08.30 07: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산백서 용역 보고회 개최, “마지막 백서돼야”

한진해운 파산을 목도한 해외에서는 즉각 자국 해운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당사국인 한국의 해운업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에 맴돌고 있어 제 2, 3의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할 공산이 크다는 진단이 나왔다.

 

“마지막 백서돼야”

지난 26일 한국선주협회 대회의실에서 ‘한진해운 파산 백서 연구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고려대해상법연구센터와 한국해운물류학회가 주관, 해본꿈이룸장학재단, 한국선주협회, 고려대산학협력단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 업계관계자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종길 성결대 교수가 경영분야, 김인현 고려대 교수가 법률분야에 대한 발표를, 이어서 정병석 한국해법학회장을 좌장으로 4명의 참석자들이 토론을 진행했다.

경영분야 용역을 발주한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부회장은 “조양상선 사태 때 교훈을 찾자는 어떠한 시도도 없었는데 아쉬움이 크다”며, “조양상선, 한진해운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이번 용역 결과가 후대 경영진을 위한 기록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지난 1961년 창립된 국적선사 조양상선은 한진해운과 유사하게 경영난으로 지난 2001년 5월 29일 법정관리를 거쳐 그해 9월 11일 파산했다.

▲ 한종길 성결대 교수
▲ 한종길 성결대 교수

법률분야 용역을 주문한 해본꿈이룸장학재단 관계자인 ㈜흥해 박관복 부사장은 “반드시 필요한 교육자료를 만들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파산백서’가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1977년 5월 설립 이후 연매출 7~8조원을 상회하는 실적을 내던 세계 7위의 정기선 선사 한진해운은 지난 2016년 8월 31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을 거쳐 2017년 2월 17일 파산했다. 지난 2013년 부채비율이 1,444%까지 치솟았으며 지속적인 경영난 늪에 빠졌던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이전에도 유동성 해결을 위해 용선료 조정 등 자율적으로 경영정상화 작업을 단행하고 터미널, 사옥 등 자산 유동화 등을 골자로 한 추가 자구안을 산업은행에 내밀었지만 법정관리 신청 전날 산업은행으로부터 지원을 거절당했다. 이에 한진해운은 마지막 회생절차카드를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금융잣대를 들이밀며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췄다. 한종길 교수는 “부채비율을 200%대로 낮춰야하는 정부 요구는 해운산업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었다”며, “장치산업인 조선업의 경우 회생절차가 들어가도 산업이 국내 잔존해 있지만 네트워크 산업인 해운업은 한번 무너지면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타국은 회생절차시 선사 지원에 초점을 맞춰 전략을 짜는데 우리나라는 회생시작부터 파산을 겨냥한 방침이었다”고 평가했다.

법정관리 주무부서의 귀에는 이러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해운 주무부서였던 해양수산부는 화주 지원, 타선사와의 노선 조정 등을 통해 회생절차 과정에서 한진해운의 버팀목이 돼 줬어야 했으나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한진해운은 붙들고 하소연할 부서마저 없었던 것이다.


해운재건 되도 오너 싫다면 또 파산

‘재벌은 망하지 않는다’는 철칙도 빗겨 간 한진해운 파산의 원인에 대해 경영상 오판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한 교수는 “네트워크 자산으로서 컨테이너선박은 꾸준하면서도 안정적인 투자가 진행돼야 하나 한진해운의 경우 △단기간에 신조확보가 진행됐고, △진행 시점이 신조선 가격이 가장 고점일 때였으며, △신조선박 인수시점이 경쟁선사들이 급속하게 공급량이 확대되던 시기였다. 선박투자 전략이 적절했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한진해운은 해운 호황기인 2000년대 중반에 대규모 선박 확충에 나선 반면 경쟁사인 유럽의 3대 선사, 중국의 코스코, 대만의 에버그린은 안정적인 선박 발주 흐름을 유지했다. 특히, 에버그린은 해운 호황기에 선박 투자를 중단하고 30% 이상 하락된 2010년 시점부터 집중적으로 선박 발주를 진행하는 전략을 펼쳤다. 여기에 시황악화 및 유가 인상이 가세하면서 한진해운은 비용 지출이 확대돼 경영은 악화일로를 겪게 됐다. 당시 얼라이언스(해운동맹)의 선복량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퇴출되는 상황에서 한진해운은 사선 및 용선 선박확보가 불가피했고 결과적으로 호황 때 무리하게 발주한 신조 및 용선료 비용이 파산으로 몰고 간 자충수로 작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투자실패와 관련해 한 교수는 “오너를 포함해 사장, 부사장, 본부장 등 경영진들이 비해운전문가가 포진하다보니 전략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고 분석했다. 용역과정에서 한진해운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진해운의 경영관련 설문분석’ 자료에 따르면 경영상 전산시스템 투자에 대해서는 만족도가 높았으나 경영진의 경영방침 및 전략, 전문성, 윤리의식은 낮은 수준으로 평가됐다.

이와 관련해 토론자로 참석한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은 “해운에서 오너십이 가장 중요하고 본다, 오너가 (선사 경영을) 안 하겠다고 하면 다시 해운이 무너질 공산이 크다”며, “해운업의 공적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역설했다.

▲ 토론 장면
▲ 토론 장면

 

‘외양간 고친’ 주체는 타국가

김영무 부회장은 “한진해운 법정관리 관리 주체들이 직전의 팬오션, 대한해운 법정관리 경험을 들며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크게 개의치 않았다가, 물류대란 등 부정기선사들보다 파장이 큰 혼란을 겪게 됐고 또한 세계로부터 조롱 섞인 혹평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한 교수가 국외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의 후가타와 전 가와사키라인 임원은 한국 해운을 평가하면서 정기선 시장에서 선사가 주역이 돼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 정부가 항만을 구축하면 한치의 문제제기 없이 선사들이 그대로 따르는 등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한국은 해양산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의 드루 교수는 한국은 조선산업 생존에 집중했지 대신 해운업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다며, 해운업을 등한시하면서 조선소의 큰 고객을 놓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와 같은 해운업에 대한 낮은 인식으로 인해 우리나라 해운업은 주저앉게 되고 국내 최대 화주인 삼성, LG 등 대형 화주들도 물류 공급사슬을 타국 운송인에게 이전시켜 결과적으로 해외 경쟁국들이 더욱 펄펄 날게 됐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해운재건 기치하에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출범해 선봉장에 서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여전히 한국은 진정성 있는 해운업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지 못해 위기가 또 찾아오면 다시 좌초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켜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진해운 파산을 목도한 타 경쟁국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국선사를 감싸고 나섰다. 대만은 국제항만기업, 운송부에서 강한 행정력을 즉각 개입해 선적 방해 혹은 해운기업에 부당한 행위에 대해 강한 제재를 가하고, 국적선사를 대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다방면으로 자국선사를 비호했다.

 

▲ 한진해운 부산사옥
▲ 한진해운 부산사옥

하역기금제도 마련돼야

법정관리 과정에서 한진해운이 요구할 수 있었던 법적장치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이 법률분야의 평가이다.

김인현 교수는 “회생절차 과정에서의 충격을 완화해줄 법적 장치들에 대해 면밀하게 인지돼야 했지만 교수, 변호사들도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며, “조양상선 등 10여 차례 도산 사례가 있었고 특히, 조양상선은 한진해운과 유사했음에도 채무자회생법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유감을 표했다. 조양상선, 두양상선, 팬오션, 대한해운, 대보인터내셔널, 삼선로직스 등 해운사들의 법정관리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음에도 회생절차 발생시의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것. 이번 파산백서가 더욱 만시지탄의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 대목이다. 한진해운은 채무자회생법을 통해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용선료를 1/10으로 줄일 수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한진해운이 회생절차에 들어서자 하역작업자들이 파산을 우려해 하역비를 현금으로 요구하며 하역에 차질이 생기자 한진해운은 부랴부랴 대체 항구를 물색해야 했고 이에 화물이 정시에 운송되지 못해 결국 화주의 신뢰를 잃게 됐다. 김 교수는 물류대란과 같은 유사시 대응을 위해 법정관리 직전 마지막 항차에 발생한 하역비 지급을 위한 기금이 마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김 교수는 “2016년 9월 부산항만공사가 주최한 한진해운 파산 관련 국제세미나에서 참석해 각 선사를 대상으로 마지막 항차 하역과 관련 기금제도를 설명했다”며, “이에 디얼라이언스는 회생절차에 들어선 선사의 하역작업을 얼라이언스 내 타선사가 처리해야 하는 방안을 즉각 도입했으며 미국 해운법 상에도 이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조문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김 교수가 나서서 국회, 정부 등을 대상으로 기금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주창했지만 여전히 답보상태라고. 김 교수는 얼라이언스에서 배제된 SM상선 등과 같은 선사를 아우를 수 있도록 국적선사들이 각출한 하역기금이 필요하다며, 초기 납부하고 20년간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아 1조2,000억원에 육박하는 유류오염추가기금과 같이 추가납입이 필요치 않다는 점에서 선사들의 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행사에서 김 교수는 마지막 항차 하역기금제도와 관련된 내용을 골자로 한 해운법 개정안 및 시행령 입법청원서를 김성찬 국회 농해수위 의원(자유한국당, 창원시 진해구) 의원실 박상진 보좌관에 전달했다. 박 보좌관은 “김 의원 또한 충분히 인지하는 사안이며 9월 중순 정도에 법안이 구성될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김 교수는 법정관리 당시 국취부선체용선(외국 국적의 배를 용선하여 일정기간이 지나면 용선한 국가 국적으로 바꾸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용선) 선박을 선사회생을 위해 운항될 수 있도록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 법원은 국취부선체용선이었던 한진 샤먼호 사건과 관련해 소유권이 한진해운이 아닌 용선주에게 있다는 판결을 한 바 있고 이에 한진해운은 60척 이상의 국취부선체용선은 채무활동에 활용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채무회생법이라는 것이 기업회생에 목적이 있다면 미국, 싱가포르와 같이 채무자회생법에 회생절차시 국취부선체용선이 압류되지 않고 선사의 회생에 이용될 수 있도록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이날 행사에서 기금제도 관련 입법청원서를 김성찬 국회 농해수위 의원(자유한국당, 창원시 진해구) 의원실 박상진 보좌관에게 전달했다.
▲ 이날 행사에서 기금제도 관련 입법청원서를 김성찬 국회 농해수위 의원(자유한국당, 창원시 진해구) 의원실 박상진 보좌관에게 전달했다.

또한, 회생절차가 개시됐다더라도 국제상사중재모델법(서로 다른 법적, 사회적, 경제적 체계를 가진 나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국제무역법)을 적용하지 않는 싱가포르, 파나마, 중국 등에서 선박을 볼모로 잡지 못하도록 신속하게 타국에 회생절차 개시를 전달할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법정관리에 들어서면서 한진해운이 자연히 얼라이언스에서 퇴출된 사안과 관련해 김 교수는 “얼라이언스 내용 상 법정관리 즉 퇴출이라는 약정 자체가 무효일 공산이 커 무효소송을 했어야 했고 그랬다면 회생과정을 장기간으로 가지고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또한, 세계 물류 흐름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정기선의 가치를 법정관리 주체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 해운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해운업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떠한 대책도 백약무효하다. 신발 끈 다시매고 출발선에 선 한국해운이 순풍을 맞을 수 있도록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