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⑱ 알쓸신잡-바다편2
하동현의 양망일기 ⑱ 알쓸신잡-바다편2
  • 하동현 소설가
  • 승인 2019.08.0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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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임선장 때다. 다른 배 선배선장이 자랑을 했다. 어느 시사월간지에 편지를 보냈단다. 만리타향 바다에서 그 책을 꼭 읽고 싶다고. 후기에 사연이 실리며 공짜로 책을 매달 기지사무실로 보내줄 테니 입항 때 받아보라는 답신을 받았다했다.

그 양반과 둘이서 작전을 짰다. 나도 다른 월간지에 동일한 내용의 글을 보냈다. 서로 바꿔보기로 하고 김칫국부터 마셨다. 친절하게도 년간 구독료를 먼저 송금하면 책을 보내주겠다며 자세한 액수와 송금방식을 첨부한 답신이 기지에 도착했다. 국제우편까지 보내 준 성의에는 감사했지만, 물 위를 떠도는 주제에 그냥 기회가 닿을 때 선배 책만 얻어 보기로 하고 때려치웠다. 공짜 밝히다 헛물만 들이킨 꼴이었다.

악천후로 닻을 내리고 피항을 하거나, 어장이동을 위해 항해할 때가 그나마 짧게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럴 때 아쉬워했던 것 첫째를 꼽으라면 바로 읽을거리였다.

고맙기도 하지, 기지사무실이나 대사관 같은 데서 날짜가 한참지난 잡지나 신문들이라도 가져다주면 황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운반선이나 유류보급선과 접선이라도 할 때면, 표지가 다 찢어져 날아 간 책이며 신문들을 교환해서 읽어야했다.

세월이 한참 지났다.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데리고 있던 항해사에 줬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전공과 관련된 기사들을 스크랩하고 경험에서 얻은 자료들을 첨가했던 비망록 같은 노트가 생각난다. 기억을 되살려 바다에 관한 잡학 몇 가지를 다시 추려본다.

 

1독특한 해사영어(海事英語) 표현들

동음이의어. 시각기관인 눈(眼)과, 수증기가 냉기에 얼어버린 결정체 눈(雪)처럼 한 단어가 여러 뜻을 가지는 것. 그중에 바다와 배에서 사용하는 독특한 영단어 몇 개를 살펴보자.

So long, 히딩크 감독이 한국을 떠나며 굿바이라 하지 않고 So long이라 했다던가. 다시 만나자는 인사다. 뱃놈들끼리 서로의 안전을 기원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동안 못 볼 인간들에게 그저 ‘안녕’이나 ‘잘 가라’가 아니라 ‘살아남아서 또 보자’라는 깊은(?) 의미가 깔려있다.

Doldrums, 경기침체를 bad economy나 economic doldrums로 표현하듯 침체, 부진이나 우울을 뜻하는 단어지만, 바다에서는 적도무풍지대를 지칭한다. 돛으로 바람을 이용한 항해를 하던 옛날, 유일한 동력원인 바람이 소멸될게 두려워 안전항해를 기원했던 의식이 적도제(赤道祭)다.

Embargo, 수출입 통상금지나, 정보제공자의 요구로 기사의 보도를 일정기간 유보한다는 의미지만, 해사용어로는 법률적인 몰수나 전쟁, 천재지변 때와 같이 입출항을 금지한 억류상태를 뜻한다.

Heading, 축구나 프로레슬링에서의 머리받기가 제일 먼저 떠오르고, 표제, 제목의 의미가 있지만, 방향, 침로, 코스를 의미하기도 한다. 조타명령으로 ‘헤딩 90도’라 외치듯이.

Port, Starboard, 배에서 좌, 우현을 Left, Right가 아니라 이렇게 칭한다. 옛날 배의 키(Steer, 방향타舵)가 약간 우현선미에 지우쳐있어 왼쪽으로만 항구에 접안을 했던 게 유래다. 우현은 Steerboard에서 변한 단어라고도하고, 별자리를 관측하는 쪽이 우현이라 그리 칭해졌다는 설도 있다.

Launching, 발사, 개발의 의미다. 홈쇼핑 같은 데서 첫 제품의 출시를 뜻하는 말로 귀에 익숙하지만, 배에서는 진수(進水)를 뜻한다. 최초로 물에 내려놓는 진수식이 launching ceremony다.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지만 이정도만 하자.

 

태풍(열대성 저기압)

고온다습한 공기의 상승이나 증발로 인해 빈 공간에 와류가 생기면서, 맹렬하게 몸집을 키우며 강우를 동반하는 소용돌이 큰바람이다. 딱딱한 기상학적 이야기는 빼고 가볍게 하자.

몇 개의 태풍이 동시다발로 발생할 때가 있다. 예보의 혼란을 막고자 호주예보관들이 제각기 따로 이름들을 붙였단다. 장난삼아 미운 정치가들의 이름을 덧씌웠다는데 여기나 거기나 좋은 이름들이 지천에 깔렸지 싶다. 우리 같으면 난리가 나겠지만, 그 양반들은 자신들의 이미지가 태풍처럼 강력해지고, 이름을 널리 알릴 기회로 여겨 되레 좋아했단다. 내공이 하해와 같은 대인배들이었다.

미국예보관들은 피해 없이 조용히 지나가라는 마음으로 사랑스런 아내와 애인들의 이름을 붙였단다. ‘제시카, 나탈리아…….’ 이런 식으로. 아니나 다를까 여성단체들의 항의로 이런 명칭들이 사라지게 된다.

한국을 스치는 북서태평양지역 태풍의 이름은 아시아태풍위원회에서 명명한다. 태풍의 영향을 받는 환태평양 14개국이 10개씩 이름을 낸다. 도합 140개, 28개씩 5개 조로 돌려가며 쓴다. 7월 말 제5호 태풍 ‘다나스’는 필리핀이 제출한 ‘경험’이라는 의미다.

사용하기에 사회적 문제가 있거나, 유난히 큰 피해가 있어 밉보이게(?) 되면 그 이름은 합의하에 퇴출되고 새 이름으로 대체한다. 우리 경남지역을 쓸어버렸던 2003년 제 14호 태풍, 북한 명칭 ‘매미’가 ‘무지개’로 바뀐 게 그 한 예다. 남, 북한 합쳐 20개니 다른 나라들 고유 언어명칭의 두 배를 한글이 차지하는 영광(?)도 있다. 일본은 단골손님으로 태풍을 맞이해야한다. 수도 없이 연이어 두들겨 패다보니 그들은 아예 당해년도 제 몇 호라고 순서대로 부르는데 익숙하단다.

고깃배에서는 호불호의 두 얼굴을 가진다. 무지막지한 폭풍우를 동반하는 공포가 먼저다. 하지만 어장을 뒤집어엎어 영양염류가 순환되면서 사라진 고기들이 다시 나타날 때가 있다. 대비책은 두 가지 뿐이다. 육지 가까운 곳으로 달려 닻을 놓고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아예 지옥행 편도열차를 예매하고 태풍과 한판 맞장 뜨며 버티기다.

후자가 히브투(Heave to) 항법이다. 전진을 멈춘다는 의미다. 풍랑에 선수를 마주하고(정선수가 아니라 좌, 우현 약간 비스듬히), 타효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으로 저항하며 떠있는 방식이다. 배 전체가 산더미 파도 속으로 곤두 박혔다가, 분기공으로 물을 뿜어내며 솟구쳐 오르는 고래처럼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눈알이 핑핑 도는 롤러코스트 두레박질로 며칠을 버텨야한다.

아차해서 선체가 휘둘려 횡파라도 맞으면 배가 넘어가는 수가 있다.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돈이었다. 일분일초가 아까워 안전해역으로 왔다 갔다 항해하는 시간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저기압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진다 싶으면 바로 그물을 던져야 했었으므로.

 

마일(mile, 해리海里)과 노트(Knot)

육지와 바다에서 마일의 단위가 다르다. 해상과 항공 1마일은 1,852m다. 간단하다. 360도로 정한 지구 한 바퀴 길이에 그 1도를 다시 60등분으로 나눈 1분의 길이다.

육지마일은 1,609.344m다. 로마어 ‘천 걸음(Mille passus)‘에서 유래한다. 고대 로마 병사들의 행군보폭 한 걸음(두 발자국)의 1,000배 길이로 환산했단다. 그때도 우리보다 다리가 길었던 모양이다. 다리 찢기 경쟁이라도 벌였던지 영국이 표준화하며 기존보다 약간 늘여 현재의 육지마일이 정해졌다.

노트는 ‘매듭’의 의미로 배의 속도를 재는 단위다. 1시간에 10마일이면 속력이 10노트라는 말. ‘로그라인’에서 유래했다. 배가 전진하면서 줄을 물로 투하하고, 모래시계가 뒤집히는 시간 28초를 기준으로 물길에 풀려나간 줄의 매듭수를 세었다. 매듭 간격은 14.3m도 있고 8.5m의 기록도 있다. 이 시간에 밀려나간 매듭의 수로 환산한 거리가 마일로 치환한 배의 속력과 유사했다는 말이다.

나라의 통치권이 미치는 영해(領海)는 12마일까지의 바다다. 옛날에는 기본적으로 3마일이었단다. 전쟁 때 자국의 방어를 위해 대포의 포탄이 날아가 도달한 만큼이라는 애매모호한(?) 정의였다. 지금도 대한해협같이 일본과 중첩되는 곳은 잠정적으로 3마일이다.

배타적 경제수역이란 영해기선에서 200해리에 이르는 수역이다. 당해국이 해양자원 탐사와 개발, 그 이용을 보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겹치는 부분을 중간수역으로 정해 양국이 공동관리 한다. ‘한일어업협정’이 예다.

공해(公海)는 어느 나라의 주권에도 속하지 않는, 외해(外海)의 의미로 개방된 해역이다. Open sea, High sea라고도 부른다.

아르헨티나 배타적 경제수역 밖 공해상에서 오징어를 잡을 때다. 도둑고기 잡던 이야기는 접어두자. 한국트롤어선들의 신기에 가까운 예망술이 하나 있었다. 조류를 감안하고 끌줄과 타각을 이리저리 조종해서, 배는 분명히 200마일 밖에 있지만 그물은 경제수역 안쪽에 떨어뜨려 끌고 다니는 신기에 가까운 방질. 다른 나라 배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도 내지 못 할 필살기였다.

 

비키니(Bikini)섬과 수영복

마샬제도 북쪽 미국 신탁통치령 산호초 섬이다. 핵실험으로 두 동강나 투피스수영복 꼬락서니라는 끔직한 농담이 따라붙는다.

먼저 수영복부터 언급해야한다. 프랑스 디자이너들의 이름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여성의 노출이 금기시되어 치마나 바지를 입고 수영하던 시절이었다. 한 친구가 초미니 수영복을 만들고, 크기가 작다는 의미로 ‘원자’를 칭해 ‘아톰’이라 이름 붙였다. 이에 질세라 다른 친구가 신문지무늬를 잘라 낸 형식의 상하분리 투피스 수영복을 내놓았다. 세상이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여성들의 배꼽과 허벅지를 드러내게 한 것이다.

작명은 가히 역사적이었다. 1946년 세계가 놀란 원자폭탄실험을 했던 섬 비키니라는 상표였다. 너무 파격적이라 모델들이 입고 나서기를 거부해 술집 스트리퍼를 구슬려 쇼에 내보냈다. 바로 외설로 낙인찍혔다. 가톨릭 국가에서는 칙용조차 금지당하고, 노이즈마케팅의 뻔한 장사 속이라는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욕사발을 뒤집어썼다.

그런데 작전세력에 의해서인지 노출이 핵실험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들의 저항이 담긴 메시지로 둔갑되고, 여성해방과 진보의 이미지까지 덧입혀졌다. 시대의 물결이 자유주의와 개성화로 급격히 변해가던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007영화의 본드 걸들과 당대의 섹스심벌 여배우들이 앞 다투어 착용하면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이런 흥밋거리 이야기 뒤에는 엄청난 재앙이 숨어있다. 원주민들의 기구한 운명이다. 그들은 수영복이 의미하는 천박한(?) 선진자본주의와 인류가 저질러 온 전쟁의 그늘아래 신음하고 있다.

미국이 원주민들을 속여 인근의 섬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10년에 걸쳐 20차례가 넘는 핵실험을 했다. 영문도 모르고 섬으로 귀환해 방사능에 노출된 주민들은 기형아를 출산하고 이름도 모를 병으로 죽어갔다. 바다거북이 마저 정신이상을 일으켜 방향감각을 상실해 한사코 육지로 기어 올라와 독수리 밥 신세가 될 지경이었다. 다시 고향인 섬을 떠나야 했고, 길고 긴 핵손해배상재판을 감내해야했다.

30년이 지나 위험요소가 사라졌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지만 그 진정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해양생태계마저 무너졌다. 인근어장에는 최강포식자인 상어들만이 득시글댄다 한다. 설상가상으로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의 위험까지 떠안고 있다.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일본 원전 사고에 지척인 우리사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다른 분야에야 입도 벙긋 못할 문외한이다. 이런 것들은 지식도 아니고 정보도 아니다. 인터넷 클릭 한방이면 세상에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젊은 친구들이 바다를 조금 더 사랑하고 알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쉽게 풀어 끄적거려본 기초해양상식쯤 되시겠다.

관찰한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면 다 보인다 했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었다. 몸으로 부딪히고 선배들에게 듣고 배우며, 바다의 역사와 생태를 조금씩 알고 기록하면서 희열을 느꼈던 신출내기 항해사 시절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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