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漁村情談 ⑱ ‘젓새우’와 ‘민어’ 그리고 전장포 아리랑
김준의 漁村情談 ⑱ ‘젓새우’와 ‘민어’ 그리고 전장포 아리랑
  • 김준 박사
  • 승인 2019.08.07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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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임자면 전장포
전장포구
전장포구

 

간낭이 맹기로 뿌옇게 이쁜 새우

요것이 육젓이요

전부 우리 손으로 맹그요

포구 앞마당에 그늘막 아래 노인 몇 명이 앉아 막 건져온 새우를 한 마리 두 마리 헤아리며 이물질을 추려내고 있다. 황석어도 들고, 갈치도 들었지만 라이터, 검은 봉지, 과자봉지, 나뭇가지 등도 많다. 이런 것은 추려내기라도 쉽다. 어구나 포장용 상자에서 부서진 작은 플라스틱은 정말 골치 아프다.

저녁에 쪽잠으로 드는 물 나는 물 네 번을 털어야 건저 온 새우는 후반 작업이 더 힘들다. 갈무리가 끝난 새우는 곧바로 천일염과 버무려 염장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젓갈이 오젓이요 육젓이다. 그 고단함을 말해 무엇 하겠는가. 시인 곽재구는 ‘전장포 아리랑’라 시제를 붙인 이유 알 것 같다. 방울방울 눈물방울처럼 많은 섬 주변에 사는 새우가 아닌가. 어부들은 그물을 털어 새우를 잡고, 낚시로 새우를 찾아온 민어를 잡았다. 전장포 아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아리랑 전장포 앞바다에 / 웬 눈물방울 이리 많은지 / 각이도 송이도 지나 안마도 가면서/반짝이는 반짝이는 우리나라 눈물 보았네

.........

서러운 우리나라 앉은뱅이 섬들을 보았네 / 아리랑 전장포 앞바다에 / 웬 설움 이리 많은지

아리랑 아리랑 나리 꽃 꺾어 섬 그늘에 띄우면서

-곽재구의 ‘전장포 아리랑’ 중에서

곽재구 시인의 ‘전장포 아리랑’ 시비
곽재구 시인의 ‘전장포 아리랑’ 시비

임자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에 속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주변에 수도, 재원도, 타리섬, 부남도 등 크고 작은 섬이 있다. 지도읍과 임자도 사이를 잇는 다리가 만들어지고 있어 조만간 배를 타지 않고 자동차나 자전거 혹은 걸어서 임자도를 갈 수 있을 것 같다. 섬 동쪽은 사옥도, 지도, 어의도로 둘러싸인 폐쇄형 만으로 해안의 굴곡도가 높아 유입된 토사가 퇴적되어 갯벌이 발달했다. 반면에 서쪽은 개방된 바다와 접해 있고 해안선이 단조로와 긴 모래해안과 사구를 이루고 있다. 이 두 해안으로 인해 갯벌이 좋은 해안은 막아서 염전을 만들고, 모래갯벌이 좋은 해안은 소나무를 심어 북서풍과 모래바람을 막았다. 그리고 대파와 땅콩을 심었다. 모두 모래밭에서 잘 자라는 작목들이다. 펄과 모래가 적절하게 섞인 임자도 바다는 새우가 서식하기 좋은 곳이며, 봄이면 조기가 찾고, 여름이면 민어가 찾아와 산란을 하며 머물다 갔다. 황석어젓이든 새우젓이든 임자도의 바다와 섬과 섬살이가 만들어낸 절묘한 조합이다. 그 만남이 ‘전장포’에서 이루어졌다.

 

젓새우 뿌옇게 이쁘요

임자도에 사람이 북적댔던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민어로 유명한 ‘타리파시’와 새우잡이 배로 알려진 멍텅구리배들이 백 여 척씩 있을 때다. 임자도에 ‘민어파시’가 시작되면 ‘육타리’와 하우리 사이 모래밭에는 수십 개의 임시 거처가 지어지고 이동파출소에 일본인 유곽까지 들어서 사미센 소리가 그치질 않았던 곳이다. 민어를 즐겨 찾던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조선은 몰라도 타리민어는 알아줬다.

칠산바다와 가까운 전장포는 낙월도와 함께 일찍부터 새우잡이로 유명한 곳이다. 낙월도가 멍텅구리배로 새우를 잡았다면 전장포는 닻배로 새우를 잡았다. 칠산바다는 새우보다 조기잡이로 유명했다. 칠산바다는 팔도의 어부들이 만선의 꿈을 그리던 로망의 바다였다. 그 대상은 조기였다. 칠산을 찾는 조기도 따지고 보면 새우를 먹기 위해서, 또 산란을 위해 찾았다. 갯벌이 좋고 모래가 적당하게 섞여 새우가 서식하기 최적이요, 조기가 산란을 하고 어린 새끼들이 먹고 자라는데 부족함이 없는 바다였다. 중선배와 닻배로 조기잡고 새우를 잡았다. 그물만 바꿔 달면 가능했다.

배위에서 그물에서 건져온 새우를 갈무리해 소금과 버무리고 있다
배위에서 그물에서 건져온 새우를 갈무리해 소금과 버무리고 있다

 

새우잡이배는 1990년대 태풍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후 폐선되었다. 게다가 수산물시장이 완전개방 되었고, 선원을 구하기도 어려워 새우잡이는 점점 쇠퇴했다. 일부는 새우잡이 대신 농사로 전환했지만 상당수 어민들은 섬을 빠져나갔다. 그래도 전장포는 옛날처럼 파시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새우잡이 포구다.

6월이면 강달어가 제철이다. 배에서 손질해 곧바로 얼음에 포장을 해서 서울로 보낸다
6월이면 강달어가 제철이다. 배에서 손질해
곧바로 얼음에 포장을 해서 서울로 보낸다

새우는 오월에 잡는 오젓, 유월에 잡는 육젓, 가을에 잡는 추젓 등으로 구분한다. 육젓이 잡힐 때 그물에 함께 들어오는 녀석 중에 따로 젓갈을 담는 새우로 북새우가 있다. 주민들은 이 새우를 꽃새우라고 한다. 붉은색을 띤 새우라서 예쁜 이름으로 붙인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예쁘다고 구경하라고 보여준 젓갈은 육젓이다. 마치 간난아이 피부처럼 뽀얗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육젓은 한 통에 수 백 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비하면 오젓은 몇 십 만원에 불과하고, 북새우젓은 헐값이다. 그래서 김치를 담글 때 꼭 새우젓을 넣어야 하는 전라도에서는 북새우를 많이 넣는다. 뭘 모르는 서울 사람들이 젓갈하면 광천새우젓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 젓갈이 모두 이곳에서 올라간 젓갈을 토굴에 넣고 숙성시킨 것이다.

다른 수협은 적자를 봐도 신안수협은 흑자란다. 모두 새우 덕이다. 작은 새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은 변화시키는지.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말은 육지에서나 어울리는 말이지 섬에서는 맞지 않다. 새우는 조류를 이용해 드는 물, 나는 물 하루에 네 번 그물을 올릴 수 있다. 그래서 하루에 ‘너 물 본다’고 이야기한다. 바닷물이 6시간 간격으로 네 번 들고 나기를 반복하니, 쪽잠을 자고 일하기를 네 번 반복해야 하는 셈이다. 그게 쉬운 일인가.

새우는 모래갯벌이 발달한 바다에 많이 서식한다. 임자도 주변의 칠산바다나 강화도 주변의 바다에 젓새우가 많이 서식하는 이유다. 그곳에는 새우만 아니

쪽잠을 자면서 새우를 그물에서 터는 것도 힘들지만 털어온 새우를 하나하나 추려가며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쪽잠을 자면서 새우를 그물에서 터는 것도 힘들지만 털어온 새우를 하나하나 추려가며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라 조기, 병어, 민어도 많았다. 지금은 조기를 사라졌지만 병어와 민어는 예전 같지는 않지만 잡히고 있다. 한때 바다모래를 많이 채취하면서 어획량이 감소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충청이나 옹진 바다에서 해사채취를 시작하면 서해바다는 몸살을 앓는다. 바다에서 모래는 육지에서 숲과 같은 역할을 한다.

새우는 오뉴월에 잡힌 새우를 최고로 알아준다. 겨울을 난 봄 새우가 육질이 단단하고 맛이 좋기 때문이다. 추젓보다 높이 쳐주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여기에 달고 고소한 맛의 신안 천일염은 오월과 유월 소금을 최고로 쳐준다. 바람이 좋고 햇볕이 좋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봄볕에 며느리 내놓고 가을볕에 딸 내 놓는다고 했겠는가. 이렇게 해서 추린 새우는 신안의 특산물 천일염과 만나서 오젓이 되고 육젓이 된다. 오월에 잡은 새우로 만들어 ‘오젓’이고 유월에 잡은 새우라 ‘육젓’이다. 이들은 젓갈에 최고봉이다.

과거 새우를 숙성시켰던 토굴
과거 새우를 숙성시켰던 토굴

 

전장포에 황석어 오르다

지난 6월 전장포에서 ‘섬 깡다리 축제’가 높은 파도로 우여곡절 끝에 진행되었다. 섬에서 개최하는 행사나 섬주민들이 계획한 일들은 날씨에 좌우되는 일이 많다. 머지않아 다리가 개통되면 우려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깡다리’는 강달어의 전라도말이다. 황석어, 황새기라고도 한다. 강달어를 처음 본 사람들은 조기새끼로 생각하기 쉽다. 조기는 칠산바다에서 떠났지만 황석어는 다행이 그 바다를 찾고 있다. 과거에는 임자도 전장포와 비금도 원평항에서 황석어 파시가 형성될 정도로 많이 잡혔다.

한때 파시가 설 정도로 번성했던 포구는 멍텅구리배가 사라지면서 크게 쇠퇴했다. 선주들은 배를 처분했고, 선원들은 마을 떠났다. 한 동안 빈집이 늘더니 이젠 안정된 분위기다. 지금도 50여 척의 배가 새우, 갑오징어, 병어, 강달어 등을 잡는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칠산바다가 예전 같지 않다지만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강달어가 효자노릇을 한다. 그 덕에 축제도 개최해 모처럼 전장포가 시끄럽다. 하지만 여전히 전장포의 주 소득원은 새우다. ‘젓새우마을’이다. 광천과 강경 일대의 새우젓의 원산지는 대개는 신안이다. 전장포 새우잡다. 칠산바다로 드는 물과 나는 물, 하루에 네 번 그물을 올린다. 새우잡이가 한창인 철에는 그물을 올리고 그 사이 새우잠을 자야 한다. 물때를 놓치면 그물로 밀려온 새우가 고스란히 바다로 나간다.

예전과 달리 새우도 잡으면 천일염으로 버무려 곧바로 인근 지도읍 송도나 뭍으로 가져가 숙성을 시킨다. 마을 뒤에 광물을 캐던 토굴이 있어 자연숙성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뜸하다. 모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쇠락해가는 포구를 회생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바다가 살아나지 않고는 포구가 활성화 될 리가 없다. 조기가 떠난 자리, 젓새우잡이도 시원찮아지고 있으니 어디에 기대어야 할까. 전장포의 아리랑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한때 칠산바다를 누볐을 배가 나이들어 모래밭에 덩그렇게 누워서 옛기억만 되새기고 있다
한때 칠산바다를 누볐을 배가 나이들어 모래밭에 덩그렇게 누워서 옛기억만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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