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니(Koonni) 어민들을 아시나요?
쿠니(Koonni) 어민들을 아시나요?
  • 김비도 기자
  • 승인 2019.08.07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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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고온리어촌계 조업 동행기

[현대해양] 지난 7월 중순 오전 9시경, 경기도 화성시 고온항선착장, 고온리어촌계 계원 100여명이 손수 만든 망태기를 매고 분주히 모여들었다. 물때에 맞춰 마을어장인 마루펄에 나가 바지락 조업을 하기 위해서다.

아침이라고 해도 여름햇살은 따갑다. 모두가 넓은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얼굴도 꽁꽁 싸 메고 타고 나갈 배를 기다리고 있다. 휴식을 취할 쉼터가 없어 어항 방파제 피복 바위에 몸을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민들의 싱싱하고 건강한 웃음과 함께 입담들이 쏟아진다.

고온리어촌계는 행정리로는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1・5리를 말하는데 옛날 고온포구(주민들은 고론포구라 부름)가 생활권이던 어민들로 구성된 어촌계다. 어촌계원은 208여명으로 경기권내에선 대규모 어촌계에 속한다.

김을 포함해 복합양식어업을 하는 계원도 있으나 대부분은 생산성이 좋은 110ha이르는 광활한 마을어장에서 바지락, 낙지, 소라 등을 잡은 맨손어업에 종사한다. 겨울에는 굴도 생산한다. 3톤 이내 소규모 어선들이 40여척이 있는데 어선어업보다는 어장관리선이나 작업선으로 사용된다.

고온리어촌계 어민들은 큰 아픔을 안고 산다.

매향리 사격장으로 알려진 미 공군 사격연습장이 있던 바로 그곳이다.

주민들은 폭격기의 오폭으로 인한 생명위협과 폭발 여파, 주택 파괴, 소음에 의한 난청 등의 피해를 겪었다. 지금도 주민들의 목소리가 딴 마을 보다 커 화가 난 줄 오해를 받을 때가 있다. 실제 마을 앞 바다에는 1951년부터 2005년까지 54년간 미군들이 포탄을 쏟아 붓던 사격 목표물인 농섬이 상흔을 간진한 채 바다위에 떠있다.

미군들은 이 사격장으로 매향리 사격장이라 부르지 않았다. 쿠니 레인지(Koonni Range)라 불렀다. 그 유래를 찾아보면 영어로 Ko(고) On(온) Ni(리)를 붙여 읽었을 때 나는 발음이 쿠니다. 이것만 봐도 미군의 사격장 운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것이 이 곳, 고온리어촌계 어민들임을 알 수 있다. 미군들이 54년을 일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포탄을 쏟아 부었지만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참고 살았다.

고온리어촌에는 농토가 거의 없다. 미군이 마을 뒤 땅 50만평을 헐값에 수용해 육상사격장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남쪽으로는 매립이 이뤄져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이 들어섰다. 고립된 마을이 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주민들이 의지할 곳은 바다밖에 없었다.

이렇게 육지 땅이 없다보니 고온리어촌계 주민들은 서해안 권내에서 섬어촌을 제외하고 순수어업에 의존하는 몇 안되는 마을이다. 그래도 아산만 내 곶에 해당하다보니 마을어장 자원은 풍부하다.

쉼터가 없어 방파제 피복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쉼터가 없어 방파제 피복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문전호 어촌계장은 “다른 어촌계에서는 새끼조개를 어장에 사다 뿌리지만 우리 어촌계가 보유한 어장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바지락들이 실하게 잘 자랍니다. 바다에만 의존해야 하는 우리 어민들로서는 이곳 바다가 참으로 고마운 곳이지요”라고 말했다.

고온리어촌계가 생산하는 바지락은 양도 양이지만 상품성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역 수집상들이 눈독을 들이는 상품(上品)들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올해 생산되는 바지락도 높은 금에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고온리어촌계는 바지락 작업을 한 달에 20일 이상을 한다. 어장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기도 하지만 물이 덜 빠지는 조금 때는 배를 타고 어장 뒤로 이동하여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밀물이 밀려오자 어민들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40여척의 배에 나누어 삼삼오오 배에 올라탄다. 오늘은 바람도 약하고 바다도 잔잔하다.

배들은 어장으로 달려간다. 오전 10시 이제 어장 위에서 물이 빠지길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40여척의 배가 물에 떠있는 것이 장관이다.

잠시 짬을 내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새참을 먹는다.

잠시 시간을 내 새참을 먹고 있는 어민들
잠시 시간을 내 새참을 먹고 있는 어민들

열무에 얼음물을 넣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니 시원한 물김치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라면을 끓여내니 든든한 한끼가 눈 깜짝할 사이 만들어졌다. 반찬으로 심심한 농담과 웃음을 나눈다.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물이 빠지기 시작한다.

오늘 조업량은 각자 60kg이 배정되었다. 자루로는 3자루다. 마음이 급한 사람은 물이 다 빠지지도

 

않았는데 바다에 뛰어들었다. 호미, 끌개, 대야 등 각자 장비를 준비한다.

삼삼오오 바지락 캐기 작업이 시작됐다.

오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2시간 남짓이다. 물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쉴 틈 없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귀어한 초보 일꾼 백추현 씨는 일을 배우느라 한창이다. “동네 형님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고 있어요. 이곳에서 몇 십 년 조업한 분들 보다 늦는 건 당연한 거죠. 동네 분들이 귀찮아하지 않고 가르쳐 주니 참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귀어하여 주민들과 깊은 정을 나누고 있음이 말 속에 묻어난다.

인정이 하늘을 굴려가고 있는 시간. 모두다 바지락 캐기에 집중하느라 말이 없다. 갈매기들만 사람을 보고 신이 났는지 까악 까악하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따가운 햇살이 등 뒤를 내려 쏟아진다. 자루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잡은 바지락을 실어갈 배로 옮기기 작업에 돌입한다.

지금부턴 각각의 옮기기 노하우가 발휘된다. 바지락을 대야에 실어놓고 줄을 당겨 나르기도 하고 아예 큰 바퀴가 달린 수레에 싣고 한 꺼 번에 나르기도 한다. 멀리 이동하기 싫은 이는 배 아래에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바지락을 잡아내어도 다음에 오면 또 생명이 넘치는 곳으로 변하니 바다는 참 신기한 곳이다. 그래서 어민은 환경론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바다를 보호하지 않으면 어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배마다 승선 조원들이 할당량을 채웠는지 여부를 살핀다.

손놀림이 빨라 본인 량을 다 채운 전 이장 이상학 씨는 부족한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살핀다. “하루 이틀 보는 이웃이 아니니 서로 도와주고 밀어주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이웃끼리 서로 돕고 사는 것 자체가 행복인 것이죠.”

밀물이 마루펄을 다 덮기 시작한다.

이제는 바로 선별작업과 세척작업으로 들어간다.

각자 잡은 바지락 중에서 작은 것들은 골라내 다시 바다로 보낸다. 저울에 올려 20kg씩 맞춰 재포장을 한다. 인심의 덤을 좀 더 올린다. 모두 다 믿고 하는 거다. 주민들끼리도 믿음이 중요하다.

이익을 더 가져가는 것도 덜 가져가는 것도 없다. 몸이 성한 한 바다에 나오며 다 똑같이 나눠가지고 간다. 바다가 베풀어 주는 것에 구별을 짓는 것이 우스운 일이다.

선상에서 세척까지 바로 진행된다. 일사분란함이 군인의 그것도 못따라 올 지경이다.

해가 이제 뉘엇 뉘엇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3시 무렵. 배들은 아침에 출발했던 고온항선착장으로 신나게 달려간다. 바닷바람이 지친 몸을 향해 시원한 청량음료같이 뿌려진다.

도착해 보내 수집상이 냉장 탑차를 대기시키고 기다리고 있다. 일본으로 보내지기 위해서다.

추가 검수작업은 없다. 고온리어촌계에 대한 믿음이 깊은 것이 확인된다.

정말 후다닥 하루 작업을 마쳤다. 힘들긴 했어도 오늘을 보낼 양식을 준비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밀려온다.

부녀회장을 오랫동안 맡았던 마을 터줏대감 전상인 씨는 “어민만한 직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나이 75세인데 지금도 내 몫은 해 내니 참 기분이 좋지요. 돈 벌이도 좋지만 내가 뭔가 할 수 있고 역할을 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바다가 참 고마운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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