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산업 성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대비하자
해운산업 성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대비하자
  • 황호선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
  • 승인 2019.08.0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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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선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은 경남고,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美 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9년부터 2017년까지 부경대학교 교수로 재직한 황 사장은 대통령자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 사단법인 시민사회연구원 초대원장,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부산진해특별위원회 위원, 경제자유구역위원회 민간위원, 전국지역혁신연구회 회장, 부산경제정의실천연합회 공동대표, (사)시민사회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대해양] ‘경영’(management)은 ‘말고삐로 말을 다루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파생된 ‘마네기아레’(maneggiare)에서 유래한다. 말을 기업에, 말고삐를 경영으로 본다면 기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의사결정과 실행 역량을 경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치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시장에 파는 활동은 기업의 본질이다. 여기서 기업은 시장과 고객, 기술과 산업의 변화를 수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해 시대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2008년 세계 최대 해운회사 머스크라인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초대형 선박을 대량 발주하면서 운임 경쟁력을 높였다. 이 시점 국내 해운선사들은 초대형 선박 확보보다는 단기간에 선박을 확보할 수 있는 용선 방식을 택했다.

호황기 비싸게 용선한 선박은 경기 침체와 함께 경영상 부담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경기가 좋을 때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고 시대의 변화를 등한시한 경영의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는 비단 해운업 뿐 아니라 그동안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많은 산업들의 몰락을 수없이 지켜보았고, 그 고통은 결국 스스로가 감내해야 했다.

최근 해운업을 둘러싼 경제구조, 사회구조, 환경과 보안, 기술 등 글로벌 트렌드와 산업구조가 급변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자들은 ‘신성장동력 발굴’, ‘체질 개선’, ‘친환경’, ‘미래 먹거리’ 등의 메시지를 앞다퉈 쏟아내며 매일같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선박만이 수출입 바닷길을 열 수 있는 시대

해운업이 직면한 산업 트렌드 변화 중에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은 친환경 시대의 도래이다. 환경보호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산업분야별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수립되고 있다. 해운산업은 ‘선박’에 의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한창 진행 중이다.

전 세계 선박들이 바다에서 준수해야 하는 규범을 관장하는 국제해사기구(IMO)에서는 최근 선박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에 의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점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대기질 오염을 저감시키기 위해 선박연료유에 포함된 황산화물 함유량을 기존 3.5%에서 0.5%로 낮춰야한다. 또한 대양의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선박평형수를 정화한 다음 바다로 배출하도록 선박에 평형수처리장치(Ballast Water Treatment System)도 장착해야 한다. 이는 전 세계 바다를 운항하는 모든 선박이 준수해야 할 규범이자 국제사회의 약속이다.

그러나 단순히 국제사회의 환경규제조치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다. 올해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기후와 환경 문제가 상위의 글로벌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또한 환경과 기후 변화에 대응을 촉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9월, 1조 달러에 달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환경 친화적 투자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에 이어 투자자 역시 점차 기업의 친환경 노력을 투자의 주요한 요소로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해운업계에서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머스크라인(Maersk Line)은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소렌 토프트 머스크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화석연료 포기는 비용절감의 차원을 넘어서 생존을 위한 도전”이라고 표현하며 환경보호 노력을 강조한 바 있다. 탄소 배출량 제로라는 목표가 다소 허황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 머스크는 지난 10년간 사업을 꾸준히 확대하면서도 컨테이너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6%나 줄여왔다.

 

변화 의지와 맞춤형 지원책 필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해운 스스로의 변화 의지와 정부의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장기간의 해운업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해운업계 홀로 이러한 변화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된 머스크라인이 해운업계의 친환경 패러다임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덴마크 해사청(DMA)의 정책적 지원과 저금리 금융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올해 초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국내 해운업계의 IMO환경규제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친환경설비 개량 이차보전사업, 특별보증, 폐선보조금, 친환경·고효율 선박 확보를 위한 신조지원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환경 친화적 선박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친환경선박법)이 제정되어 2020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친환경선박법을 통해 국내 해운선사의 친환경선박 확보를 위한 지원책 마련이 점차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지원은 해운선사의 자발적인 변화 의지가 있을 경우에 정책적 실효성이 극대화된다. 국내 해운업계에서는 자율적으로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공동 연구개발(R&D)을 통해 자사 특성에 맞는 경영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 공사 역시 국내 해운업계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연관 산업간 협력과 기술개발을 이끌어내고, 금융·정책지원을 통해 업계가 부담해야하는 경제·사회적 비용의 최소화를 위해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

미국의 교육자인 존A. 셰드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묶어 두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실에 안주하고 내 주변을 지키기에 급급해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해운업도 환경 중심의 산업구조로의 변화를 인정하고, 정부와 학계, 산업 모두가 앞으로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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