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방지법’, 바다 위에서도 작동되나?
‘괴롭힘 방지법’, 바다 위에서도 작동되나?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07.20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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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히면 끝’ 분위기 쇄신없인 미봉책

 

[현대해양] 간호사 ‘태움’으로 촉발된 갑질 근절 법인 ‘괴롭힘방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바다 위에서 근무하는 해양종사자들도 실질적으로 보호해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신고 창구 생겨 ‘환영’

직장 곳곳에서 발생하는 갑질에 대한 신고·조사·징계 조치 등을 가능케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제76조 2) 내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법'이 7월 16일부터 시행됐다. 욕설, 준폭행과 같은 괴롭힘의 경우 그간 처벌 규정이 없어 현뱅법상 명예훼손죄 등을 우회적으로 적용해야 했으나, 앞으로 △직장 내 지위·관계의 우위 이용, △업무상 적정범위 넘을 것,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등이 모두 해당되는 갑질행위라고 판단되면 누구든지 신고가 가능해 진 것.

사용자는 신고자에 대해 불리한 처우를 해서도 안 되며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신고자를 보호하고 있다. 허나 △신고 받는 주체가 사업주이고, △ 원청의 괴롭힘을 받은 하청직원은 같은 공간에서도 구제받을 수 없으며, △4인 이하 사업장은 적용 불가하다는 제도적인 한계가 존재하지만, 역대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규정을 법률에 표명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선상에서도 적용 가능해

어선원, 염전, 양식장 등지에서의 '노예', 승선근무예비역들의 자살 사건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수산업계 정부기관이 주도로 인권 실태조사 및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해상종사자들에 대한 각종 노동강요, 폭행, 욕설 폭언 등은 그치지 않고 있다. 해양경찰청이 조사한 지난 2016년부터 3년간 인권유린 사건 536건 중 대부분은 폭행(529)이었으며, 임금갈취(3), 약취유인(3), 윤락알선(1) 등도 드러났다.

이 가운데 괴롭힘방지법이 인권 사각지대였던 해상에서도 시행되면서 해상종사자들도 갑질을 신고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됐다.

해양수산부 선원정책과 노정담당 관계자는 “선원은 노동법이 아닌 선원의 직무, 복무, 근로조건의 기준, 복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선원법에 통상 보호를 받고 있지만 선원법에 근거가 없으면 노동법에 있는 조항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며 선원 또한 괴롭힘방지법 적용이 유효하다고 전했다.


유명무실했던 갑질 신고 창구

하지만 괴롭힘방지법이 인권사각지대의 해상종사자들의 울분과 분통을 실질적으로 그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시선이다.  

우리 정부가 지난 2006년 해사노동협약(MLC)을 비준하여 우리나라 상선 선원들은 그동안 갑질에 대해 억울함을 알리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괴롭힘방지법이 보장하는 신문고 역할과 비슷한 장치들로 보호돼 왔다. 설령 선박이 편의치적제도에 따라 타국의 선박, 선원으로 등록됐다 하더라도 국제협약에 따라 우리나라 선원이면 누구든지 보호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실습선의 자살, 폭행 등의 인권 유린 사건은 잠잠하다 싶으면 다시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곤 한다. 지난 3월 자동차전용운반선에서 한 기관사가 실습선원 4명을 공구로 수차례 때리고 술을 억지로 마시게 강요하는 사건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으며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실습선 괴롭힘 사건 진상조사에 대한 청원들도 올해만 해도 수 건에 달한다.

▲승선 중인 실습생들, 사진 = 한국해양대
▲승선 중인 실습생들, 사진 = 한국해양대

이런 상황에서 신고할 수 있는 대응창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습생들은 선 듯 나서지 못하고 있다. 선원노정 관계자는 “군대는 2년 복무가 끝나 선후배를 안보면 그만이지만 승선근무예비역은 복무 후에도 업계에서 계속하여 상사들과 연을 이어나간다”며, “한번 ‘이단아’로 찍히면 좁은 국내 해운시장에서는 설 곳을 잃게 된다”고 밝혔다. 실습생이 괴롭힘을 신고하면 선장, 상사가 인사고가권을 지닌 상황에서 개인에게 역풍이 돼 돌아오는 것을 감내해야 되므로 법적 대응책에서 시선을 뗄 수밖에 없었던 것.

이는 사용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통상적으로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괴롭힘방지법 적용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비슷한 양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사실상 괴롭힘방지법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안착하기 전까지는 전문가들은 괴롭힘방지법을 통한 신고를 신중하게 할 것을 제안한다.

노무사 A씨는 “노동부에 진정해도 회유하는 경향이 많은 현실에서 신고 시 노동부 진정과 같은 방법을 우선한 다음 괴롭힘방지법으로의 순차적 접근이 더욱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노동사건에서 수사기관을 불신해 민사법원 판결 후 다시 고소·고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선원 보호 위해 ILO 비준 동반돼야

상선원은 제도적 보호장치가 있었지만 어선원의 경우 더욱 열악한 공간에서 그간 각종 갑질에 그대로 노출돼 왔다.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오랜 기간 조업을 하는 어선의 특성상 노동착취, 강제노동, 인신매매 등에 노출되기 쉬운 어업종사자들을 위한 보호장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앞으로 괴롭힘방지법이 관행처럼 인권유린이 곳곳에서 고착화됐던 수산업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단시간에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ILO어선노동협약을 비준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선에는 MLC 협약이 적용되지 않아 어선원 권리보호는 흠결이 있어 왔다. 세계노동기구(ILO)가 지난 2007년 채택한 ‘어선원노동협약’은 어선원의 근무조건, 보건의료관리, 승선 근로 최저요구사항 등 어선원에 대한 국제기준으로 상업적 어로작업에 종사하는 모든 어선원들에게 적용된다. 현재 세계 14개 국가가 비준했다.

국제적으로 어선원 인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지난 2일 오영훈 의원·공익법센터 공동주최로 국회에서 ‘ILO 어선원노동협약비준 컨퍼런스’가 열려 관계자들은 국제 수준에 맞는 어선원 근로기준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바다 위에서 갑질에 시달리는 선원들을 구제할 실질적인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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